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5·18 민주묘지에서 한 '무릎 사과'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대표 후보는 "역사의 진전"이라고 호평했다. 무릎 사과후 나온 여당 반응 중에 이런저런 토 달지 않고 잘했다고 평가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광훈발(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는 이때, 광주 방문이 화제 전환용으로 비춰지는 것이 오해인가"(허윤정 대변인) "독일 빌리 브란트 수상의 '무릎 사과'를 흉내 낸 것이다. 표 구걸 신파극이 광주 시민에게 통하지 않을 것"(정청래 의원) "미래를 향한 다짐과 실천이 없는 무릎꿇기는 쇼에 불과하다"(이원욱 의원) 등등 '쑈하고 있네'를 에둘러 말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광주 김종인'은 당연히 쇼다. 세상에 쇼 아닌 정치가 어디 있나. 보통 진정성 없는 행위를 쇼라고 한다. 사적 영역에선 '쇼하고 있네'라는 비판이 말이 된다. 정치에선 그렇지 않다. 정치인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 전부다. 가령 친일파 파묘 논란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현실성없는 가정이다). 문 대통령이 속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중요하다. 역사의 화해를 제안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부동산 난국에서 화제 전환을 꾀한 것일수도 있고 중도층 표를 겨냥한 계산일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말 그 자체다. 정치인은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직업이다. 보여지는 것, 쇼가 곧 메시지이다.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유대인 묘소를 찾아간 것은 엄청난 쇼였고 메시지였다.
그런 점에서 '광주 김종인'은 잘된 쇼다. 한번 무릎꿇었다고 문제가 다 풀리지는 않겠지만 실마리는 된다. 광주의 아픔에 스스로 책임을 자처하고 용서를 구했다. 책임인정과 사죄. 한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장면 아닌가. 광주를 영원히 1980년에 묶어두고자 하는 심산이 아니라면 이것을 미래로 나아갈 단초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당신 속마음은 그게 아니자나. 응?' 하고 딴죽 거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지금 여당은 역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유대인 묘소에서 무릎꿇은 빌리 브란트를 마르고 닳도록 인용해온 세력이다. 빌리 브란트 무릎에는 진정성이 있고 김종인 무릎에는 없다는 건가. 무슨 근거로?
사실 쇼는 여당이 많이 했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열가지는 더 된다. 취임직후 적폐몰이쇼, '한반도에 봄이 왔다'쇼, '임금 높여 경제성장 마술' 소득주도성장쇼, 60대만 신나는 국가주도 일자리창출쇼, 괴담 수준의 탈원전쇼, 산야 허무는 태양광쇼, 개혁이라 쓰고 장악이라 읽는 검찰개혁쇼, 총선 일등공신 전국민재난지원금쇼, 지소미아 파기 협박쇼, 친일파 파묘쇼, 23전23패 부동산쇼, 쇼쇼쇼···이들 쇼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돈이 많이들고 둘째 국민을 양분시키고 셋째 성과가 초라하다. 안했으면 더 좋았을 쇼 들이다.
정치는 쇼라서 타락하는 것이 아니다. 나쁜 쇼를 하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이다. 계속 죽 쑤던 미래통합당이 간만에 광주에서 제대로 된 쇼를 한번 했다. 타박할게 아니라 여당도 그런 쇼 좀 해보라. 돈 안들면서 국민 통합시키는 그런 쇼 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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