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단독] 한중관계 고려…韓, 대만 리덩후이 사망에 조용한 비공식 조문
입력 2020-08-10 16:21  | 수정 2020-08-11 16:37

지난달 30일 사망한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주타이페이 대표부 대사를 보내 비공식 조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리덩후이 총통 조문 문제는 중국이 각국을 상대로 별도 공식 조문단을 구성해 대만에 보낼 경우 각종 보복 조처를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외교 사안이다. 중국이 수호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기를 드는 행위라는 뜻이다.
10일 한국 외교부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외교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리덩후이 총통 조문객으로 총영사급인 강영훈 주 타이베이 한국 대표부 대표를 보냈다.
정부 인사는 매일경제 확인 요청에 "그간의 관례에 비춰 적절한 방식으로 조문을 했다"고 밝혔고, 대만 외교가 인사는 "현 강영훈 대표께서 조문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확인했다.

앞서 정부는 차이잉원 현 총통이 재선에 도전한 올해 1월 총통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뒤에도 외교부나 청와대 발 공식 축전을 보내지 않고 강영훈 대표부 대표 명의로 대신했다. 이는 지난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중국을 배려해 대만과 공식 외교계가 단절된 후 고착화한 관행이다.
한국과 대만은 실질적인 경제·사회 교류협력이 증진되고 있음에도 상호 간 대사관이 아닌 대표부가 가동되고 있다.
일본도 최근 전직 총리이자 현재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9일 하루 일정의 전세기 편으로 대만을 방문해 조문을 마쳤다.
일본 아베 총리가 전직 총리급 조문으로 최선의 예우를 하려는 이유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재직 시절 일본 정부에 친화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 것과 무관치 않다.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배(1895~1945년)했을 때 그는 일본군에 자원입대해 포병 소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바 있다.
그의 형도 일본군에 입대해 1944년 필리핀 전선에서 사망했고, 그 위패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그는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면서 사법과 행정 분립을 이뤘고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베 정부는 전직 총리의 조문에도 불구하고 모리 전 총리의 대만 방문이 정부 공식 조문과 무관한 개인적 행보라고 선을 그은 상태다. 리덩후이 전 총통의 조문 문제로 중국과 불필요한 대립을 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실질에서는 예우의 수준을 최대로 높이는 전략적 행보를 보인 셈이다.
그런데 대만 외교가에서는 모리 전 총리의 비공식 조문 일정이 9일 하루만에 이뤄지고 당일 출국한 것을 두고 '벼락치기 조문'이라는 씁쓸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눈치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조급한 행보가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한편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보건분야 협력을 위해 지난 9일 대만을 방문해 체류 중인 알렉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일 조문한다.
조문이 성사되면 1979년 대만과 단교 이후 미국이 백악관 관료 중 최고위급을 보낸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이재철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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