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이 말하는 美코로나 실패…"`넛지`가 부족했다"

한국시간으로 10일 오전 마침내 코로나19 전세계 확진자가 2000만명을 돌파했다.
이 중 26%에 해당하는 520만명의 감염자가 미국에서 나왔다. 지난 4월 뉴욕주에서 시작된 감염폭발세가 넉 달이 지난 지금까지 진정되지 못하고 다른 주로 재확산한 배경에는 단연 '마스크 정책 실패'가 거론된다.
한국인들 입장에서 미국민들의 마스크 거부 현상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자신을 보호함으로써 타인을 함께 보호하는 이타적 행위임에도 미국인 상당수가 아직까지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지향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이라는 게 중론인데, 지난 4월 뉴욕주가 하루 1만 명이 넘는 신규 감염자가 쏟아졌을 때 다른 주의 카운티에서는 신규 감염자가 채 10명이 안 되는 곳이 수두룩했다. 이런 곳에 사는 주민들을 상대로 전면적 마스크 착용을 요구할 경우 정책 수용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미 공영라디오인 'NPR'는 최근 미국의 마스크 정책이 실패한 이유로 '넛지' 정책의 부재를 꼽아 눈길을 끈다.
넛지(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확장한다.
인간 의사결정에서 드러나는 비합리성을 파악해 바람직한 결정을 유도하려는 행동경제학 상 넛지 전략은 선진국 정책 설계에서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된 넛지의 공동저자인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계기도 공공정책에 실제 긍정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가 제안한 부드러운 넛지 전략은 미국의 은퇴자 노후대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401K)는 근로자가 받는 급여 중 일부와 회사에서 제공하는 매칭 방식으로 노후 자금 마련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제도다. 문제는 근로자들의 저조한 가입률. 그런데 넛지 전략을 적용해 이 제도의 가입 방식을 종전 '옵트(선택적) 인(참여)' 방식에서 '옵트(선택적) 아웃(탈퇴)' 방식으로 바꾸면서 변화가 일었다.

근로자가 명시적으로 탈퇴 신청서를 제출하는 게 아니면 401K에 가입한 것으로 보는 선택적 탈퇴 절차로 바꾸면서 가입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근로자의 가입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복잡한 가입 신청 양식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옵트 아웃' 방식이 적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NPR는 어떤 이유로 미국의 코로나19 마스크 정책이 실패했다고 판단한 것일까. 한마디로 미국 사회에서 '부드러운 개입' 역할을 하는 넛지형 리더와 정책 노력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제1'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 할 이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팬데믹 기간 내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다가 7월 말에서야 뒤늦게 "마스크 착용이 애국"이라며 입장을 바꾸는 등 되레 마스크 정책실패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작용했다.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남성들의 마초적 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몬태나 주가 제작해 배포한 포스터들. 남성적 활동인 낚시와 사냥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넛지 전략을 활용했다. <사진 = 스티브 블록 몬태나 주지사 트위터>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 '제2'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 할 주지사들 역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반(反)마스크 행보를 취했다. 그 결과 마스크 착용 문제가 '민주당원이냐, 공화당원이냐'를 판가르는 정치적 낙인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로 마스크 의무화를 앞장서서 역설했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도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에 실패했다고 NPR는 지적한다.
넛지 전략의 핵심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의 편향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쿠오모 주지사는 마스크 착용 거부자들을 향해 "무모한(reckless)", "무책임한(irresponsible)" 등의 부정적 단어를 남발하며 압박해 오히려 반발심을 키웠다는 평가다.
NPR는 쿠오모 주지사의 마스크 넛지 전략 실패와 관련해 네덜란드의 글로벌 주류기업인 하이네켄의 실험을 소개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 전염병연구소 소장

이 회사는 음주운전을 낮추기 위해 영국 내 10개 펍에서 손님들에게 "당신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오늘 공짜로 나초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제안의 주체는 단골고객들에게 친구와도 같은 바텐더였다. 실험 1주일이 지나고 보니 음주운전 사례가 종전 대비 50% 가까이 감소했다. NPR는 이 실험에서 친숙하고 부드러운 바텐더와 같은 부드러운 개입자가 존재하고, 공짜 나초라는 보상이 더해지면서 법으로 강제해도 줄이기 어려운 음주운전 수치를 유의미하게 감소시켰다고 평가했다.
미국 북부에 자리잡은 몬태나 주는 하이네켄의 실험과 가장 유사하게 부드러운 개입을 시도했다.
몬태나 주는 마스크 거부 현상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남성들의 마초적 심리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깨기 위해 야생에서 낚시를 하거나 사냥을 하는 역동적 남성 이미지와 함께 이들이 한결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이 포스터의 헤드라인은 "몬태나 주민들은 (낚시를 하든, 사냥을 하든) 늘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것이다.
이 넛지 전략이 실제 몬태나 주의 마스크 착용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검증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NPR는 그럼에도 개인의 행동을 공공의 이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넛지 전략을 활용한 주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앞으로 국가적 백신 접종 작업에서도 이 같은 넛지 전략이 미국은 물론 다른 국가에서 중요한 화두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자신은 물론 어린 자녀들에게도 백신을 맞지 않도록 하려는 부모들이 국가를 가리지 않고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보건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백신 접종에 넛지 전략을 접목하려는 고민과 시도가 있었다. 예컨대 부모 동의 방식을 '옵트 아웃(선택적 탈퇴)' 방식으로 바꿔 학부모가 반대를 표명하지 않으면 접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자녀의 백신 접종 여부를 초등학교 입학자격과 연결시키는 보다 강한 접근의 목소리도 있다.
이와 관련해 NPR는 넛지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시민들의 머리 속에 있는 잘못된 정보와 편향성을 누그러뜨리고 모방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리더'의 중요성이다.
NPR는 그 대안 인물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현재 미국 사회에서 이를 수행할 최적의 인물을 꼽자면 단연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다. 그는 지난 주 미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임상시험에서 약 3만명 정도를 테스트해 아무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 그 백신은 걱정 없이 맞아도 된다"라며 고령인 자신에게 백신을 먼저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주저없이 이에 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코로나19 감염 리스크를 줄여주는 100% 완벽한 백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10명 중 5명에게서 접종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이는 사회 전체로 볼 때 집단면역 효과를 일으켜 제2, 제3의 팬데믹과 이에 따른 경제시스템의 마비 위험을 피하게 한다는 취지다.
그는 마스크 착용 문제로 사회적 불신을 심화시키고 치료 효과가 없는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을 잊을 만하면 언급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도 바른소리를 해왔다. 기행과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대통령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왜곡된 행동방식을 초래하는 못하도록 최전선에서 뛰어왔다.
자존심은 상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그의 이 같은 우월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열 번을 해고해도 모자랄 그를 여전히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TF팀에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이 상용화했을 때 국민들을 상대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낮출 '부드러운 개입자'로서 파우치 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