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뒤통수 맞은 50대 "정부믿고 착실히 청약가점 쌓았는데…"
입력 2020-08-06 17:42 
서울시가 '8·4 수도권 공급 대책'에서 목돈이 없는 30·40대를 위한 지분적립형 분양(초기 20~25% 분양가에 집 마련)을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벌써부터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청약통장 납입금액 혹은 자녀 수 등을 기준으로 뽑는 일반적인 공공분양과 달리 100% 추첨제로 운영하기로 해 그야말로 로또복권처럼 '운'만 기대하며 기다려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청약통장에 매달 10만원씩 돈을 넣은 50대 이상 무주택자와 2자녀 이상을 계획해 청약 당첨을 꿈꿨던 신혼부부, 3자녀 이상인 다자녀 가구는 수십 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그저 받아들여야 할 판이 됐다. 서울시가 시세 차익을 많이 얻는 '로또분양'을 없앤다며 지분적립형 분양을 만들었지만, 당첨 자체를 로또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2023년부터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분양을 진행하는 곳에는 모두 지분적립형 분양을 도입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성동구치소 600가구, 면목행정타운 500가구 등 택지개발을 통해 총 9000가구, 그리고 노후임대 재건축 및 공공재개발로 8000가구를 2028년까지 분양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8·4 대책 때 포함된 용산정비창, 태릉골프장 등 주요 용지는 대부분 국공유지여서 아직은 지분적립형 분양 도입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지분적립형 분양이란 분양가의 20~25%를 내고 소유 지분을 얻은 후 나머지 지분을 20년 혹은 30년에 걸쳐 내는 것을 말한다.
분양가가 5억원이라면 1억원(20%)만 있어도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남은 4억원에 대해선 4년에 한 번씩 중도금처럼 완납하는 구조다. 지분적립형 분양은 초기 목돈이 필요 없고, 월 임대료도 낮게 책정해 실수요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로 설계됐다.

논란이 되는 이유는 입주자 선정 방식이다. 서울시는 지분적립형 분양에 대해 소득 기준(월 평균소득 130%·4인 가족 기준 809만원·일부 물량은 160%까지)을 맞추면 100% 추첨제를 통해 입주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공공분양의 경우 추첨은 25%(생애최초 전형 물량)이고 나머지 75%는 통장 납입금액(일반공급) 혹은 자녀 수(다자녀 혹은 신혼부부 특별공급)를 기준으로 뽑는데 서울시가 도입하는 지분적립형 분양은 '100% 추첨'이다. 지난 6월 공공분양을 한 고덕강일8단지 일반공급 경쟁률이 124.2대1이란 점을 감안하면 복권에 준하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당장 20년 이상 청약통장을 납부한 50대 이상 무주택자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통장을 가입한 지 23년 된 직장인 이중곤 씨(가명·51)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청약통장에 매달 10만원씩 꼬박꼬박 넣어 일반공급 합격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이제 와서 100% 추첨으로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우리 기회를 뺏어서 젊은 층에게 준다니 이민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자녀계획이 있는 신혼부부도 불만은 마찬가지다. 최근 아이를 가진 김중혁 씨(가명·34)는 "공공분양은 자녀 수를 기준으로 해서 2자녀가 기본이다 보니 2년 후 둘째 출산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100% 추첨제로 바뀐다니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이번 지분적립형 분양을 설계한 SH공사 측은 무자녀 신혼부부도 집을 가지면 아이도 더 가질 것이라 여겨 100% 추첨으로 제도를 기획했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애가 두 명인 사람이 집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공공분양 특별공급에 있는 다자녀(3자녀 이상) 전형이 아예 사라진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녀 셋을 둔 직장인 김윤정 씨(가명·42)는 "아이 셋을 양육하느라 목돈 모으기 힘들어서 마음에 드는 단지도 분양가가 겁나 청약을 못한 적이 있다"며 "그래서 지분적립형 분양에 희망을 걸었는데 아예 다자녀 특별공급 자체가 없다고 하니 허탈하다. 정부가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밝혔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 소장은 "기존 공공분양 제도를 보고 청약 대기자들이 오랫동안 준비했을 텐데 갑자기 틀을 바꿔버리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기존 제도 틀대로 움직이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아직 확정된 안은 아니어서 추후 어떻게 제도를 운영할지 더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이선희 기자 / 나현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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