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남미 확진자 500만명 코앞…코로나 위기 파고드는 中 원조 외교
입력 2020-08-03 17:29  | 수정 2020-08-10 18:07
전세계 코로나19 피해현황/그래픽 출처=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로 전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미국 이웃' 라틴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해 일대 국가들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자 중국이 줄기찬 '원조 외교' 공세를 펴고 있다. 미국이 외교에 소홀한 사이 지구 반대편 중국이 화상회의를 열어가며 이들 국가에 손 뻗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매체 엘문도는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네러티브(화법)을 강요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들을 향해 돈다발 외교에서 마스크 외교로 방향을 틀어 영향력 키우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발원지 논란을 회피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단호한 코로나19 대응 조치가 효과적이었으며 중국은 국제 협력에 힘쓴다'는 메세지를 강조해왔다.
엘문도는 코로나 사태 이전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들의 철도·항만·통신 등 공공인프라스트럭처 사업 자금을 대는 방식의 '수표 외교'를 통해 돈다발을 뿌려왔다면 최근에는 '마스크·백신 원조'에 나섰다면서 이같은 전략은 미국의 외교 공백을 이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특히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에 대해서도 적극 공략에 나섰다. 지난 달 23일 중국의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 부장은 멕시코와 콜롬비아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주요 10여국 외무장관과 화상회의를 열고 이들 국가에 코로나19 백신 지원 용도 10억 달러(약 1조 1935억원)를 원조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다음 날인 24일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대통령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중국 정부에 매우 고맙다"면서 "많은 항공기가 중국에서 의료 장비를 실고 우리나라로 온 점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반겼다.
이날 중국이 연 회의에는 멕시코 외에도 대표적인 '친미국가'로 분류되는 콜롬비아를 비롯해 칠레·페루·아르헨티나·우루과이·에콰도르·파나마·코스타리카 등이 참여했다. 이 중에서도 멕시코는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차단을 강조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통상협정'(USMCA·7월 1일 발효)에 '제외 조항'을 넣어 멕시코와 중국 간 협력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 제동을 걸고 나선 바 있다. '제외 조항'으로 불리는 제 32.10조항은 멕시코와 '시장주의 경제 체제'를 따르지 않는 국가와의 협력을 제한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중국이 멕시코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진다.

다만 멕시코 등을 향한 중국의 10억 달러 백신 지원 발표는 불과 나흘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폭스뉴스선데이' 인터뷰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장벽(미국-멕시코 국경장벽)을 거의 다 지었습니다"라면서 "이 벽이 없었다면 미국은 멕시코와 관련한 엄청나게 큰 문제를 가지게 됐을 겁니다"라고 발언한 다음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8일 암로 멕시코 대통령과 워싱턴 DC백악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그를 향해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는데 불과 열흘 만에 멕시코를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반대로 중국은 멕시코 지원 의사를 밝히며 외교적 포섭에 나선 셈이다.

중국은 지난 5월 말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연 후 국제적 고립 피하기에 나선 상태다. 신화망에 따르면 지난 달 15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현재 세계는 각국 이익이 고도로 융합하고, 인류가 동고동락하는 운명 공동체이므로 협력 윈윈은 대세"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은 특히 '미국 뒷마당' 이라고도 불리는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권역에 공들이고 있다. 엘문도는 중국 기업들이 최근 멕시코에서 암로 대통령의 정책 공약이자 우선 사업인 '미야 관광열차' 주요 부문 사업권을 따냈다고 전했다.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는 경제 개발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사업 외에도 '자원 부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공략 대상이다. 칠레의 구리, 페루의 구리·은, 브라질의 철광석 등이 대표적인 원자재다. 일례로 페루의 주요 은 광산인 라스 밤바스 광산을 중국업체인 MMG가 소유·운영하는 식으로 중국은 이들 국가 원자재 산업에 깊숙히 진출해 있다.
한편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에서는 코로나19가 나날이 빠르게 퍼지면서 지난 주말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총 20만 명을 돌파했다. 확진자도 총 500만명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들 권역 인구는 전세계 8%정도이지만 공공 보건 의료 시스템이 부족한 탓에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확진자 규모가 전세계 30%를 차지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집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2일 월드오미터가 각 국 보건부 발표와 추가 상황을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날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497만 2563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총 20만 1768명이다. 총 사망자를 기준으로 전세계 피해 1~3위는 미국에 이어 브라질, 멕시코 순이다. 총 확진자를 기준으로 한 전세계 피해 1~10위 중 미국(1위)을 제외하면 브라질(2위), 멕시코(6위), 페루(7위), 칠레(8위), 콜롬비아(9위) 순이다.
바이러스 피해를 따라 그늘을 키우는 것은 '가난의 고통'이다. 유엔은 지난 달 '정책 브리프 : 코로나19가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일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내고 해당 권역 경제가 올해 9.1%뒷걸음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빈곤층은 4500만명이 더 늘어나 2억3000만명에 달할 것이며 특히 생계 해결이 불가능한 극빈층 숫자는 2800명 늘어나 96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국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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