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그가 악역을 맡으면 뜬다, `다만 악`으로 돌아온 배우 이정재
입력 2020-07-30 15:24 
30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이정재(48)가 악역인 영화는 잘된다. 한국영화계에 널리 퍼진 이야기다. 후안무치 친일파로 나온 '암살'은 1270만 명을 동원했다. 수양대군으로 등장한 '관상'은 900만 명 넘게 보며 "내가 왕이 될 상이냐"란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에 그가 또 악역으로 돌아오며 영화팬이 술렁이고 있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비정한 킬러 '레이'를 연기한 것이다.
'관상' 수양대군 소개 장면 떠올리게 하는 '역대급 등장신'
이정재는 `다만 악`에서 등장만으로 영화 속 공간의 공기를 서늘하게 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30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레이가 등장하면서부터 (이 사람은 진짜 악인이라는) 믿음을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많았다"고 운을 뗐다. 실제 이 영화에서 레이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 그곳의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버리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한국영화 악역 역대급 등장 신(scene)으로 꼽히는 '관상'의 수양대군 소개 장면과 비견할 만한다.
"제가 연기한 레이는전사(前史)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 캐릭터예요. 왜 얘가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시나리오상에 없어요. 외모만 봐도 캐릭터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강한 이미지를 드려야 했어요."
악당 캐릭터 신뢰감 높이려 "무슨 음료 마실지까지 세세하게 설정"
이정재는 레이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의상·타투·소품까지 세세하게 설정했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은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담은 영화다. 살인청부업자 인남(황정민)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이라고 다짐하며 죽인 사람이 하필 일본에서 백정으로 불리는 킬러 레이(이정재)의 형제라서 생기는 갈등이다. 레이는 인남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태국 방콕을 들쑤시고 다닌다. 그는 아주 디테일한 소품까지도 스스로 의견을 내며 레이의 오라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냉혹한 킬러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마신다든지, 아이스 박스 속 얼음을 우적우적 씹어먹는다든지 하는 장면이다.
"이 신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빨대가 꼭 필요하다고 연출부에 의견을 냈어요. 태국 현지 아이스박스에는 아주 작은 슬러시 같은 얼음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얼음이 아니라 덩어리가 큰 얼음이 필요하다고 스태프에게 이야기했죠. 생활적인 설정이 들어가야 인간미라곤 전혀 없는 맹목적인 추격자 캐릭터에 설득력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감독 데뷔작 '헌트' "정우성과 함께 하고파"
그의 악역 연기는 믿고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상`에서 수양대군으로 분한 모습 [사진 제공 = 쇼박스]
배역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그는 '퍼포머'를 넘어 '크리에이터'다. 실제로 감독 데뷔작 '헌트'(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20여 년 전 '태양은 없다'(1998)에 출연하며 함께 전성기를 맞았던 정우성에게 주연을 제의하고 있다.
"4년 동안 제안했고, 4년 동안 퇴짜맞았어요. 원래 매사에 신중한 분이에요(웃음). 우성씨랑 '또 같이 하자'고 8, 9년전부터 이야기 했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남들이 주는 시나리오 기다리다가는 답이 없겠다고 생각했죠. '우리가 기획을 하자'고 마음먹고 시나리오 개발을 했어요.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있어야죠."
명대사 많이 남겼지만 "한 번도 의도한 적 없어"
이정재는 대사의 맛을 살리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배우다. 어떤 대사가 히트할지는 맞출 수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혹시?"란 기대는 갖고 산다고 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숱한 명대사를 남겨온 그이지만 한 번도 의도한 적은 없다고 한다.
"'이 대사를 관객분들이 왜 따라하시지?' 초반엔 굉장히 의아했어요. 내가 연기를 이상하게 했나란 생각도 많았고요. 그 이후로도 계속 관심을 보여주시니깐, '이 대사도 많은 분들에게 회자가 될까'란 기대가 없진 않았는데, 제가 생각했던 거랑 매번 다른 대사를 꼽으시더라고요. 그래도 '혹시 이 영화에서도?'란 궁금증은 있어요."
'신세계' 황정민과 재회 "정민이 형 캐스팅 된 거 알고 더 하고 싶어졌죠"
레이(이정재왼쪽)와 인남(황정민)이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장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은 히트 범죄물 '신세계'(2012) 이후 8년 만에 이뤄진 이정재-황정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신세계'에서는 둘의 뜨거운 우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면, 이번 영화에선 서로를 죽이기 위한 일념으로 차갑게 붙는 하드보일드(범죄와 폭력을 감정 묘사 없이 차갑고 건조하게 그리는 방식) 장르의 쾌감을 전한다. 액션 장면의 격렬함은 '신세계'를 능가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와 다시 작업을 하는 걸 언제나 열망하죠. 정민이 형이 먼저 캐스팅 된 사실을 알고 시나리오를 읽어서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아요. 정민이 형이 이 장면을 잘 살려줄 거라는 신뢰가 있었어요. 시원하고 속도감이 높은 액션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다만 악'을 봐주시면 됩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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