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재택근무 효과` 美 대도시 집값 상승세 둔화…노벨경제학 수상자 "앞으로 떨어질 듯"
입력 2020-07-29 15:15  | 수정 2020-07-31 17:07
계절 조정치 기준 전월 지수 대비 증감율

천정부지로 치솟던 뉴욕·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주요 대도시 주택가격 지수가 떨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여파로 '재택 근무'가 확산된 가운데 나온 의도하지 않은 효과다. 집값이 앞으로도 조정 장세에 들어갈 것이라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의 전망도 눈길을 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구글 등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정보통신(IT)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택 근무 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면 집값 상승세가 반전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28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푸어스(S&P) 글로벌이 발표한 '5월 S&P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인덱스'를 보면 5월 뉴욕·샌프란시스코·시애틀 등 주요 대도시 집값이 지난 날보다 떨어졌다. 계절적 영향을 제외한 조정치(SA)를 기준으로 4월 대비 지수 하락이 가장 두드러진 5개 도시는 미시건 주 미네아폴리스(-0.7%),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0.5%), 워싱턴 주 시애틀(-0.2%), 뉴욕 주 뉴욕(-0.1%),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0.1%) 순이다. S&P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인덱스는 대표적인 미국 주택 가격 지수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는 지난 3월 중순 이후 미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했고 구글 등 실리콘밸리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재택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이어 4월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주택 가격 지수 월간 변동률이 마이너스가 됐고 5월에는 뉴욕과 라스베이거스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5월 미국 전국 주택 가격 지수는 4월보다 0.1% 오른 반면 19개 대도시는 0.0%로 제자리 걸음했다. 19개 대도시 내에서도 5월 말 '흑인 차별 반대 시위'가 극심하게 일어난 미네아폴리스를 제외하면 샌프란시스코·시애틀·뉴욕·라스베이거스 등은 대형 상업·업무 시설이 들어찬 도시다. 19개 대도시는 미국 내 도시 규모·중요성을 고려해 선정한 것이다. 보통은 20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했지만 3~5월 '락다운' 여파로 디트로이트가 제외됐다.

S&P다우존스지수의 크레이그 라사라 글로벌 지수투자전략 총괄국장은 "5월 미국 집값은 안정적으로 움직였지만 본격적인 하락세를 접어들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최근 8개월을 보면 5월의 주택 가격지수 상승폭이 4월보다 작아 상승세가 둔화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라사라 국장은 또 "19개 대도시를 보면 3개 도시에서만 집값이 올랐다"면서 지난 3월에는 18개 도시, 4월에는 12개 도시 집값이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상승여력이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지난 13일 CNBC 화상 인터뷰에서 "지금은 주식·채권 시장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을 모두 포함해 자산 가격이 고평가됐다"고 진단한 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전세계대유행)을 계기로 앞으로 도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행동경제·금융 전문가인 실러 교수는 지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인덱스'를 공동 개발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로서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을 도화선으로 주택·금융 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러 교수는 팬데믹을 계기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 근무 체제가 확산되면서 도심 주택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사람들이 레스토랑과 박물관, 극장이 즐비한 도시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교외 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는 전례없는 위기 속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으며 또 온라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직업 형태도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부동산 중개·감정업체 밀러사무엘·더글라스엘리만이 앞서 9일에 낸 '6월 주택 임대시장 동향'보고서를 보면 '금융 중심지' 뉴욕 맨해튼 임대 아파트 공실률이 6월 들어 3.67%로 치솟아 14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룸 월세는 5월보다 4.7%떨어져 하락 반전했다. 6월 한달 간 임대 매물로 나온 아파트도 1만 가구로, 지난해 6월 대비 85%폭증했다. 맨해튼 외에 뉴욕 시내 브루클린과 퀸즈 일대 임대 매물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57% , 41% 늘어났다.
실리콘밸리를 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집값 하락세가 감지된 바 있다. 온라인 주택 임대 플랫폼인 줌퍼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원룸 임대료는 지난 6월 11.8% 하락해 업체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두 자릿 수 하락율을 기록했다. 앞서 5월(-9%)보다 낙폭이 더 커진 것이다. 이에 대해 안데모스 게오르기아데스 줌퍼 최고 경영자(CEO)는 "샌프란시스코는 정보기술(IT)기업이 줄줄이 들어선 실리콘밸리를 끼고 있는 탓에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임대료가 오르기만 했다"면서 "시장이 이렇게 변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임대료가 내려간다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트랜드세터' 구글이 실리콘밸리 IT 대기업 중 처음으로 재택 근무를 내년까지로 전격 연장했다. 순다르 피차이 CEO는 27일(현지시간) 구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코로나 여파로 도입한 재택 근무 체제를 내년 7월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면서 "이번 조치로 직원들이 일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과의 균형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구글은 지난 3월 재택 근무 체제에 돌입하면서 2021년 1월에 복귀할 계획이었지만 이번에 6개월 간 조치를 더 연장한 셈이다. 연장 조치는 실리콘밸리 본사 직원 뿐 아니라 미국 전체 사무소와 영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사무소에서 일하는 정규·계약직 직원 총 20만 여명에게 적용된다.
앞서 5월, 트위터의 잭 도시 CEO는 무기한 재택 근무 체제를 선언한 바 있다. 도시 CEO는 "우리는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할 무렵 어떤 기업보다 앞서 재택 근무제를 시행했다"면서 "서버 유지보수 등 업무 특성상 출근을 해야만 하는 일부 부서 직원을 제외하고 재택 근무를 원하는 직원은 언제든 무기한으로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도 같은 5월에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 직원 절반은 집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면서 재택 근무 체제로 전환할 것임을 강조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MS), 세일즈포스닷컴 등 미국 주요 IT기업은 이르면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직원들을 회사로 복귀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코로나 재유행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28일 CNN은 실리콘밸리의 트랜드를 이끄는 구글의 재택근무 연장 조치가 다른 기업 근무 방식에게 유사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런 경우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가 들어선) 캘리포니아 일대 일부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뉴욕 주에 본사를 둔 마스터카드가 지난 5월 20일 "코로나19 백신이 출시될 때까지 본사와 전 세계 지사 직원들의 재택근무 체제를 이어가겠다"면서 "재택근무 체제와 사무실 등 부동산 관리 문제를 논의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재택근무 체제가 자리 잡으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사무실 공간을 기존의 30%만 써도 될 것으로 보여 미래의 부동산 자산 관리에 대해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재택 근무의 시대'가 와도 도시가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러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도시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 말에 전화가 발명됐을 때도 도시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번창해왔다"고 말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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