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견, 침묵, 증거제시 요구도 2차 가해 해당하나요?
입력 2020-07-26 06:18  | 수정 2020-08-02 06:37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전직 비서 성추행 의혹을 둘러싸고 '2차 피해'와 관련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2018년 '미투'(Me Too) 운동 이후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비난을 멈춰야 한단 목소리가 커졌지만 박 전 시장 사건에서도 여전히 피해자를 탓하는 2차 가해성 발언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이후 온·오프라인에서는 피해자를 향해 '범죄 피해를 폭로할 거면 얼굴을 공개하라', '왜 4년이 지나서야 말하나' 등 피해자 책임론을 주장하거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아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냐는 식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일반 네티즌뿐만 아니라 현직 검사·정치인 등 친여 성향의 유명인들도 가세해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시장님 아이폰 비번(비밀번호)을 피해자가 어떻게 알았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도 "구체적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며 "고소인 측의 정치적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글을 썼다.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과 팔짱을 낀 사진을 올리며 "권력형 성범죄를 자수한다. 성인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했다"고 썼다.
피해자 측은 1차 진술서 유출과 신상털이 등 2차 피해 상황에 대해 경찰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지난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모든 비난이 향하고 있는 것은 피해자와 변호인, 지원단체 흠집 내기를 통해 피해자의 입을 막고 진실을 부정하고 피고소인과 관련자들을 비호하려는 것"이라며 "국가와 지자체는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피해란 용어는 '성범죄 등 피해자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범죄의 책임을 돌리는 행위로 인해 또다시 입게 되는 피해'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2차 피해를 '수사, 재판 등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피해와 집단 따돌림, 폭언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밖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나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한 각종 불이익조치도 2차 피해 개념에 포함된다. 온라인 상에서 피해자의 신상을 털거나 비난을 가하는 행위도 모두 2차 피해에 해당할 수 있다.
법률상 공식 용어는 '2차 피해'지만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자·가해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2차 가해'라는 용어 또한 널리 사용된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조두순 사건도 피해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등 피해자를 부각했지만 지금은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2차 가해란 용어를 점차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피해자 말을 믿지 않거나 증거를 요구하는 것도 2차 가해냐', '변호사를 욕하는 것도 2차 가해냐'는 등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신 변호사는 "피해자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고 '피해자 책임론'을 들먹이며 몰아가는 분위기 자체가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이 경우 피해자 진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김재련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 당시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지낸 이력 등을 이유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법률대리인은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변호사에 대한 공격이 곧 피해자의 의도 등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당연히 이뤄지는 신고, 고발, 증거의 제시나 진술, 증언 등을 요구하는 것은 2차 가해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건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진술이 필요하지만 성 이력을 물어보거나 사건 정황과 관계없이 '옷을 왜 그렇게 입었냐'는 등 피해자를 탓하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도 넓은 의미의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계에선 2차 피해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용어 남용 또한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권김현영 교수는 지난 2017년 한국여성민우회 토론회에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데 윤리적 기준이 높은 시민단체 등 그룹에서 '2차 가해'라는 개념이 조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이후의 논의를 막는 데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 치유와 회복 측면에서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일반인이나 수사기관에서는 특정 행위가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단 점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다른 의견을 제기하거나 침묵하는 것 자체로 2차 가해로 볼 순 없지만 관련 내용을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활발히 논의하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금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