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와대·경찰·서울시 "피소사실 알려준 적 없다"…진실 게임'으로 번지는 사태의 양상
입력 2020-07-14 07:48  | 수정 2020-07-21 08:05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사실을 알았던 정황이 뚜렷해졌으나, 관계 기관들이 모두 "알려준 적이 없다"라거나 "아예 몰랐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태의 양상이 '진실 게임'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고소를 접수한 경찰은 "청와대에는 보고했으나 서울시나 박 시장에게 알린 적은 없다"고, 청와대는 "(박 시장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서울시는 "피소 사실을 아예 몰랐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습니다.

◇ 8일 늦은 오후와 9일 오전 사이에 피소 사실 파악했을 듯

박 시장이 9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급작스럽게 극단적 선택을 할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런 추정은 기정사실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고소장은 8일 오후 4시 30분쯤 서울지방경찰청에 접수됐으며, 그 직후부터 고소인이 9일 오전 2시 30분까지 1차 진술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 고소인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박 시장이 피소 사실을 파악했던 시점은 고소장이 접수된 8일 오후와 본인이 일정을 취소하고 관사를 나선 9일 오전 사이로 좁혀지게 됩니다.

◇ 피소 사실 어떻게 알았나

남는 의문은 박 시장이 피소 사실을 언제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느냐는 것입니다. 아직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부적절한 정보 유출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짙습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고소인 측 변호인 등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며 이런 정황을 지적했습니다.

이 소장은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 수사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목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습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성추행 고소 사건의) 수사 상황이 '상부'로 보고되고, '상부'를 거쳐 그것이 피고소인에게 바로바로 전달된 흔적이 있다"며 경찰 수뇌부나 청와대를 통해 박 시장에게 피소 사실이 전달됐을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사실이라면 공무상 비밀누설일 뿐 아니라 범죄를 덮기 위한 증거인멸 교사 등 형사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경찰·청와대, 정보 유출 의혹 부인

정보 유출 의혹에 대해 경찰과 청와대는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소 사실이 박 시장한테 전달된 경위는 알지 못한다"며 경찰이 서울시나 박 시장에게 직접 알려줬다는 일각의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은 서울시와 직접적인 접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혹은 난센스"라며 "거물급 피의자의 경우 수사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 소환해야 할 때 당사자에게 피소 사실을 알린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 메시지에서 "청와대는 (박 시장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8일 저녁 경찰로부터 박 시장이 고소를 당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이 사실을 박 시장 측에 통보한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 성추행·고소 사실 아예 몰랐다는 서울시

박 시장이 피소 사실은 8일이나 9일에야 알게 되었더라도, 피소 전부터 전직 비서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려고 한다는 움직임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김재련 변호사는 "올해 5월 12일 피해자를 1차 상담했고, 26일 2차 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피해 내용에 대해 상세히 듣게 되었다"며 "하루 뒤인 5월 27일부터는 구체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시작해나갔다"고 말했습니다.

이럴 경우 경찰이나 청와대 등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고소인의 움직임이 파악돼 박 시장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인권담당관이나 여성가족정책과 등 공식 창구로는 관련 사항이 신고로 접수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박 시장의 피소 사실은 9일 박 시장이 잠적한 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파악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박 시장을 보좌한 전·현직 측근 대부분은 9일부터 연합뉴스의 통화 시도에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김재련 변호사나 이미경 소장 등 고소인 측 관계자들의 주장은 서울시 측 주장과 상반됩니다.

김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이런 지속적 피해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호소했고 동료 공무원이 (시장으로부터) 전송받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성적 괴롭힘에 대해 비서관에게 부서를 옮겨줄 것을 요청하면서 언급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경 소장은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비서 업무는 시장 심기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며 피해를 사소하게 만들어 더이상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 수사나 진상조사 없이는 규명 어려울 듯

이처럼 박 시장이 늦어도 9일 오전에는 피소 사실을 파악했음이 명백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관들 모두가 알린 적이 전혀 없다고 주장함에 따라 수사나 진상조사 외에는 진실을 밝힐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성추행 사건 자체는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게 됐으나, 부적절한 정보 유출이 발생했을 개연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정황이 뚜렷해짐에 따라 이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나 진상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럴 경우 고소장이 접수된 8일 오후부터 박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9일 오후까지 통화 내역이 의혹 규명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 시장이 9일 오전 일정을 취소하고 10시 44분쯤 시장 관사를 나선 시점과 오후 3시 49분쯤 성북동 핀란드대사관저에서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시점 사이에 지인 등과 통화를 한 내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통화 상대나 내용 등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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