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업계에서 크게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비닐하우스를 스마트팜으로 바꿔주는 솔루션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름은 그린랩스다.
사실 이런 회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유독 눈길을 사로 잡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스마트팜 솔루션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해당 농장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수집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때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한 곳에서 공급해 줄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디지털 농업 플랫폼' 비즈니스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그린랩스가 빅데이터와 인터넷 플랫폼을 농업에 접목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은 창업자들의 이력과 관계가 깊다. 그린랩스를 이끌고 있는 신상훈·안동현 대표는 이미 IT스타트업을 창업해 엑짓(지분매각)을 경험했을 정도로 IT업계에선 알려진 인사들이다.
신상훈 대표(40)는 국내 최대 전자책 플랫폼인 리디북스 초기 경영진을 거쳐 젊은층을 상대로 한 데이팅 앱 '아만다'를 운영하는 넥스트매치를 2013년 창업했다. 아만다는 순식간에 인기가 오르며 앱 다운로드 수 300만을 기록했다. 신 대표는 이후 수요층과 후속 비즈니스 모델에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회사를 매각했다.
안동현 대표(39)는 '핫딜 쇼핑 포털'을 내세운 쿠차를 2011년 출범시킨 장본인이다. 한 때 개그맨 신동엽이 여성으로부터 '싸다구'를 맞는 이색 광고를 내보냈던 그 기업이다. 한때 앱 다운로드 수 1600만을 기록할 정도로 잘 나갔다. 안 대표는 2013년 회사 지분을 옐로모바일에 매각했다.
IT업계에서 자연스레 만나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은 각각 회사 지분을 매각한 뒤 신규 사업으로 뭘 하면 좋을지 고민에 빠졌다. 신 대표는 "세상은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고, 기존 산업이 ICT와 만나 신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며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 뛰어들어 이런 트렌드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분야가 뭐가 있을지 찾았는데, 그게 바로 농업이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농업은 발전해야 할 여지가 크고, 온라인보다는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거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한 농민이 그린랩스 스마트팜 솔루션이 설치된 비닐하우스 안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작물의 생육환경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제공=그린랩스>
2017년 5월 창업한 그린랩스는 초기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해 나가고 있다. 현재의 주력 사업은 데이터 기반 농장경영시스템 '팜모닝'을 농가에 보급하는 일이다. 회사가 지금까지 스마트팜 솔루션을 구축해준 농가는 800개에 달한다. 올해 말이면 2000개에 달할 것으로 회사는 전망하고 있다.지난해 매출액 93억원을 달성한데 이어 올해 매출은 이보다 최소 4배 이상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성장 기대감에 힘입어 프라이빗 에퀴티 펀드(PE)인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여러 투자사들로부터 총 10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린랩스는 2000평 비닐하우스를 200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스마트팜으로 변신시켜준다. 하우스 바깥에는 일사량과 기온, 강수, 풍향, 풍속 등 기본 기상정보를 측정하는 장비가 설치된다. 하우스 내부에서도 별도로 일사량과 기온, 습도, CO2 농도, 토양의 온도와 습도 등을 측정한다. 이를 통해 최적의 작물재배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문과 커튼을 언제 열어야 할지, 송풍기와 환풍기는 얼마나 돌려야 할지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그린랩스는 각 스마트팜에서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수집되는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최적의 값을 결정해 주는 역할도 한다. 안 대표는 "기존의 관행농법에서는 농부의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면 이제는 각종 센서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준으로 농민이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가 회사의 미래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충우기자>
그린랩스는 농민들을 육체 노동자에서 지식 근로자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 대표는 "빅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농민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온도와 습도, CO2 농도 등을 보여줄 수 있다"며 "농민들이 그에 따라 미리 각 수치를 설정해 놓으면 농장이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건비를 비롯한 부대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농민들이 최고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나아가서는 빅데이터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최적의 재배방법을 스스로 학습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러나 농민들이 그린랩스의 이런 시스템을 쉽게 도입한 건 아니었다. 관행농법에 익숙한 농민들에게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팜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농촌에 살다시피 하면서 몸을 던져 농민들을 설득한 안 대표의 공이 컸다. 그린랩스의 핵심 기술과 서비스를 기획한 안 대표는 창업 후 농민들을 만나러 다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농민들에게 그린랩스 솔루션의 장점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농사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과 같았다.
안동현 그린랩스 대표가 새로 시작할 디지털 농업 플랫폼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충우기자>
안 대표는 "많은 사업자들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는 농민들은 처음엔 젊은 사장을 신뢰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농촌에 살다시피 하면서 조금이라도 솔루션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달려가 농민들과 고충을 함께 나눴더니 어느 순간 믿음을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그린랩스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팜 솔루션을 공급하는 데 주력하지만 앞으로는 농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농업 플랫폼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린랩스의 최종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디지털 농업 플랫폼'이다.
신 대표는 "농민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배만 잘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전 과정에서 효율을 높여야 한다"며 "비료와 농기구 등 농자재를 어떤 걸로 쓰고, 수확물을 어떤 채널로 팔아야 할지를 최적의 방안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흩어져 있는 정보를 한데 모으는 게 필요하다. 그린랩스가 농업 플랫폼을 구축한 이유다. 특히 그린랩스를 통해 스마트팜을 도입한 농민들만이 아니라 모든 농민들을 회원으로 받아 농사에 관한한 A부터 Z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린랩스가 운영하는 스마트팜 솔루션 '팜모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각종 정보들.<자료제공=그린랩스>
우선 최소 1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신 대표는 "처음에는 신문 전단지만 있던 시장에서 배달의 민족이 모든 정보를 한 곳에 모음으로써 디지털 배달시장을 창출해 냈듯이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한 데 모아 서비스하면 농민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작은 병충해 하나도 직접 전문가를 불러서 해결했다면 앞으로는 웹에 사진을 올리는 것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린랩스는 그래서 모닝노트라는 서비스를 새로 도입한다. 팜모닝 플랫폼 가입 회원들에게 농부에게 꼭 필요한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키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날씨, 시세, 농법, 농자재 등 다양한 정보가 포함된다. 안 대표는 "회원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쌓이는 데이터의 양과 질이 모두 개선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팜모닝 서비스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의 판로 확대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신 대표는 "농민이 생산한 작물과 그런 작물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간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게 농산물 유통의 근본적인 문제"라며 "농업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그런 미스매치가 해결될 수 있어 농민들이 가장 좋은 가격에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 대표는 "농민들이 그린랩스의 팜모닝 서비스를 통해 그동안 농사에 투입했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마치 화이트 컬러처럼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그러면 농민들은 어떻게 하면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농산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한국 농업이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