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셋값 안올리고 10년 임대줬는데…`착한 집주인` 임대차 3법에 발동동
입력 2020-07-09 17:33  | 수정 2020-07-09 20:44
◆ 혼돈의 부동산시장 ◆


직장인 박 모씨는 최근 전·월세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임대차 3법' 시행이 임박했다는 뉴스를 듣고 근심에 빠졌다. 지난해 7월 입주한 경기 화성 서동탄 아파트 전용 84㎡를 전세 놓고 있는데 1년 전에 전셋값을 너무 싸게 받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2400가구가 대거 입주하다 보니 전세 물량이 쏟아져 전셋값이 떨어졌지만 2년 뒤 만기 때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현재 아파트 전셋값은 1억원 가까이 올랐지만 앞으로 전세를 올릴 수 없어 손해를 보게 생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신고제 등 임대차 3법 추진 소식에 전·월세 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집주인들은 '세를 준 집에 이사 가야 한다' '월세로 돌려야 한다' 등 대안을 강구하느라 바쁘고, 세입자들도 '전세 물량이 줄어들면 어쩌나' '갑자기 내쫓기면 어떡하나' 등 불안한 심정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년간 선의로 전셋값을 올리지 않았던 집주인들은 임대차 3법에 전셋값을 못 올리게 돼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최근 계약 종료를 앞둔 임대인들은 임대차 3법 시행에 대비해 호가를 올리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동시에 시행되면 4년간 임대료를 못 올리니 4년 인상분을 한꺼번에 챙기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임대 기간이 6개월 이상 남은 곳들은 비상이다. 특히 아파트 입주장 때 전세를 싸게 내놓은 곳들은 "꼼짝없이 손해 보게 생겼다"는 반응이다. 통상 아파트는 입주 때 전세 물량이 쏟아져 전셋값이 낮게 책정되고 서서히 오른다. 지난해 수원 아파트를 월세를 안고 매입한 직장인 이 모씨는 "세입자가 월세를 밀려서 내년 7월 계약 만료 때 전세로 새 세입자를 받을까 했는데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 더 살겠다는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여당이 발의한 임대차보호법에서 전월세상한제는 계약 갱신 때 임대료를 직전 임대료의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이 소급 적용되면 기존 임대를 준 사람은 다음 계약 때 그 임대료의 5% 이내만 인상이 허용된다. 이 때문에 일부 집주인은 아예 자신이 세를 준 집에 들어가 산 뒤 다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전·월세를 놓는 방안까지 고려한다.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 세를 준 직장인 이 모씨는 "시세보다 3억원 낮게 전세를 줬는데, 내년 계약이 끝날 때 내가 들어가 살다가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집주인들이 속속 입주하면 그만큼 전·월세 물량이 줄어 궁극적으로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전셋값은 6·17 대책에 포함된 실거주 조건 강화로 매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며 54주 연속 상승세(0.10%)를 이어갔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집값과 전셋값을 잡는 데 모두 실패하고 시장 불안만 부추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출 규제 등 각종 규제에 매매가와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며 불안한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찾고 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집주인이 계약 종료 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보증기관이 대신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반환해주는 상품이다. 이 보증 가입은 2015년 3941가구에서 지난해 15만6095가구로 급증했고, 올해는 6월 말까지 이미 반년 만에 8만819가구(16조2734억원)나 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갭투자자에 대한 전세자금 대출 규제가 한층 강화되며 갭투자를 한 집주인들이 유동성 위기로 집을 경매에 넘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금 인상도 막아놔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일이 생기고 있다"며 "전·월세 시장이 불안한 상황인 만큼 세입자들도 여러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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