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 시위 거점인 코즈웨이베이 지역의 유명 호텔에 '보안법 담당 사무소'를 차리고 본격적인 홍콩 통제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부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발효를 승인하면서 홍콩 옥죄기에 나서자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홍콩달러 페그(통화 가치 연동)제를 대폭 약화시킴으로써 홍콩의 '금융 허브' 지위에 타격을 주는 식으로 중국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날 홍콩 코즈웨이베이 지역 메트로파크 호텔에서는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국가안보공서' 개소식이 열렸다고 전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야경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메트로파크 코즈웨이베이 호텔은 이날 부로 국가안보공서 사무실이 됐다.
개소식에는 국가안보공서 총 책임자로 임명된 정옌슝과 '국가안보사무 고문'을 맡은 뤄후이닝 홍콩 주재 홍콩-중국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주임,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등이 참석했다. 경찰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주변 도로가 봉쇄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 뤄 주임은 "중국의 사법 시스템과 법치주의에 의문을 가지고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려는 세력이 있지만 국가안보공서는 홍콩의 안전과 국가안보를 지키는 특사"라고 강조했다. 다만 앞서 지난 5월 21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은 삼권 분립에 따른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캐나다 사법부는 중국처럼 굴러가지 않는다"면서 중국을 정면 비판한 바 있다.
홍콩 주재 국가안보공서는 출범 전부터 1984년 영국과 중국이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을 위반하는 기관이라는 국제 사회 비난을 받아왔다. 국가안보공서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NPC)가 홍콩 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법에 근거해 홍콩 정부의 홍콩보안법 시행을 감독·지도하는 임무를 부여한 조직이다. △외국이 홍콩에 간섭하거나 △홍콩 정부가 효과적으로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홍콩 공무를 지휘하는 관할권을 가진다. 다만 '홍콩반환협정'에 따르면 홍콩은 입법과 사법, 행정, 교육 분야에서 자치권을 인정받기로 한 바 있다.
주요 외신은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메트로파크 코즈웨이베이 호텔을 국가안보공서 사무소로 정했다고 보고 있다. 코즈웨이베이는 T갤러리아 홍콩점과 소고백화점 등 상업 시설과 더불어 빅토리아 공원 등이 자리해 유명한 곳이다. 무엇보다 지난 해 홍콩에서 '범죄인 중국 본토 신병인도(송환)법' 반대 시위가 가장 활발히 일어났던 지역이며, 메트로파크 호텔 맞은 편 빅토리아 공원은 '홍콩 시위대의 성지'로 불려왔다.
홍콩 보안법이 지난 1일 발효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이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홍콩의 특별 지위 폐지와 더불어 홍콩달러 페그제 약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백악관 보좌진들은 홍콩 은행들의 달러 매입에 제한을 걸어 페그제 시스템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그제는 일종의 고정 환율제다. 홍콩달러 환율을 1미국달러 당 7.75~7.85홍콩달러로 가치를 고정시키는 식이다. 홍콩에는 중앙은행이 따로 없고 금융관리국(HKMA) 감독 하에 HSBC와 스탠더드차터드(SC), 중국은행(Bank of China) 등 시중은행이 미국 달러를 사들이거나 되팔면서 홍콩달러 가치를 유지해왔다.
지난 달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HSBC 은행을 향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굽신대는 창피한 기업(Corporate Kowtows)"이라면서 "매우 치욕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앞서 같은 달 3일 피터 웡 HSBC 홍콩·상하이 지역담당 CEO가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인터뷰를 통해 "HSBC는 홍콩 보안법을 지지한다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해당 법은 홍콩이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중국 지도부의 홍콩 보안법 강행을 찬성한다고 밝힌 데 따른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월가에서는 홍콩달러화 붕괴에 베팅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바 있다. 미국이 중국 측 '홍콩보안법'강행에 반발해 홍콩에 대한 무역·투자 등 특혜를 취소할 것임을 암시하면서 홍콩의 '아시아 금융 허브'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미국 헤지펀드인 해이먼캐피털의 카일 바스 회장은 최근 홍콩 달러 붕괴에 거액을 베팅했다. 지난 달 블룸버그 통신은 "바스 회장이 전부 따거나 아니면 전부 잃는 방식(all-or-nothing wagers)으로 홍콩 달러 붕괴에 과감히 베팅했으며 관련 옵션 계약은 레버리지가 최대 200배에 달한다"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바스 회장은 지난 2008년 모기지론 붕괴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전례없는 승부수를 띄워 거액을 번 헤지 펀드 투자자로 유명하다.
바스 회장은 구체적으로 얼마를 베팅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18개월 내 홍콩달러화가 미국 달러 대비 극도의 약세를 보이면 바스 회장의 베팅이 성공해 이익이 200배에 달하게 되며 실패하는 경우 회장의 베팅에 투자한 사람들은 자금 전부를 잃게 되는 구조다. 앞서 지난 달 1일 해이먼캐피털은 관련 펀드를 출품하는 투자설명회에서 "홍콩달러화 가치가 40%떨어지는 경우 투자자들이 투자금의 64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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