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21대 국회를 향해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평등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30일 인권위는 '직장내 괴롭힘', '혐오표현' 등 구체적인 차별을 규정한 평등법 시안을 발표했다.
평등법 시안이 규정한 차별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성희롱, 괴롭힘, 차별 표시·조장 광고 등 크게 5가지다. 간접차별은 겉으로 보기엔 중립적이지만 결과적으론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야기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직무와 상관 없는 조건으로 키 170cm 이상인 사람에게만 지원 자격을 준다면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불리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성차별로 볼 수 있다. '김치녀, 된장녀', '가짜난민' 등 혐오표현과 직장내 갑질, 학교내 괴롭힘 등은 차별의 한 유형인 괴롭힘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차별사유로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 고용형태 등 21가지를 명시했다. 인권위의 과거 결정에 따르면 아동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 키즈 존'과 외국인 주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각각 나이와 국적에 따른 차별에 해당한다.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근무복을 다르게 입거나 명절선물, 상여금 등을 차등적으로 받을 경우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로 볼 수 있다.
인권위는 "비정규직 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고려할 때 고용형태를 별도의 차별사유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봤고 비정규직 관련법률과의 정합성도 고려하여 차별사유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다르게 대우하는 행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차별로 보지 않는다. 평등법은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에 필요하거나 이미 차별을 받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우대하는 행위 등은 차별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차별사유로 정한 데 대한 일부 종교계 반발에 대해선 "위원회가 제시한 평등법 시안은 고용, 재화·용역 등의 일부 영역에 적용되며 설교나 전도 그 자체는 평등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되는 것"이라며 "종교 등을 이유로 달리 대우하는 행위가 무조건 차별로 판단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남성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역차별 우려에 대해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남성도 마찬가지다. 성별을 이유로 하여 위원회에 제기된 진정 중에는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다"며 "차별을 시정하고 평등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누군가의 몫을 뺏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를 조금씩 넓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차별이 발생하면 인권위는 시정을 권고하고 법원은 임시조치 명령이나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차별이 악의적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통상적인 재산상 손해액 이외에 손해액의 3~ 5배에 이르는 '가중적 손해배상' 부과 규정도 두고 있다.
인권위는 "'악의적'이란 차별의 고의성, 지속성 및 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피해 내용 및 규모를 고려해 판단하도록 했다"며 "이 규정은 차별 피해자에 대한 손해의 전보와 동시에 차별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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