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인천상륙작전' 1945년 미군 보고서가 결정적
입력 2020-06-25 19:30  | 수정 2020-06-25 19:37
【 앵커멘트 】
오늘은 6·25 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부산까지 단숨에 밀렸던 불리한 전세를 바꾼 것은 성공 확률 5천분의 1이라고 했던 인천상륙작전 덕분이었습니다.
MBN 취재결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1945년 미군이 작성한 보고서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성원 기자가 단독으로 보도합니다.


【 기자 】
한국전쟁의 판세를 바꾼 인천상륙작전.

인천 앞바다는 밀물 시간이 짧은데다, 좁고 긴 수로 때문에 7만 5천여 명의 연합군 부대가 상륙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한국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세계 역사상 22번째 위대한 전투가 될 거이라며 상륙작전을 감행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1945년 미 극동육군사령부가 작성한 작전계획과 미 제24군단이 그해 9월 인천에 입성했을 당시를 자세히 기록해둔 실시간 보고서가 존재한 것으로 MBN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인천항 주변 해안선의 길이와 30피트 약 9m가 넘는 조수 간만의 차, 8노트에 달하는 조류, 넓은 갯벌의 존재 등 당시 인천항 주변의 구체적인 정보가 기록됐습니다.

지도에는 인천항 부근의 수심은 물론이고 방파제와 백사장의 위치, 접항시설의 보수 상태와 갯벌의 위치를 비롯해 6~8인치라는 깊이까지 표시돼 있습니다.

상륙한 병력이 이동할 진출입로를 포함해 인천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표기돼 있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인천항 주변과 조수 간만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항공사진도 첨부돼 있습니다.

미군은 1945년 당시 일본군의 패전 처리를 위해 인천에 들어왔는데, 혹시 모를 교전에 대비해 인천항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 인터뷰 : 남보람 /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 "수년 동안 구축해놓은 자료에 의거해서…승리를 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찾는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 인천상륙작전 계획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5천분의 1의 도박이 아니라 충분히 성공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실행한 작전이었다는…"

이후 미 공군 정찰팀의 정밀 촬영과 한국인이 중심이 된 켈로부대원의 팔미도 등대 탈환 등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불가능해 보이던 작전은 세계 전투사에 남는 승리가 됐습니다.

MBN뉴스 한성원입니다.

영상취재 : 박원용 기자
영상편집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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