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교·교육청·교육부 '불협화음'…"등교 줄었는데 어떻게 예산 신속 집행?"
입력 2020-06-25 08:49  | 수정 2020-07-02 09:05

"코로나로 학교에 아이들이 예전처럼 매일 등교하지 못해 돈 쓸 곳이 없는데 예산을 빨리빨리 쓰라고 하고, 연말엔 예산 집행률을 개인 성과평가에도 반영한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죠."

경기도 용인의 A초등학교 행정실장 B 씨는 얼마 전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2020학년도 학교회계 세출예산 집행 현황(5월 말) 알림 및 학교회계 세출예산 신속집행 추진계획 수립여부 제출'이란 긴 제목의 공문에는 '예산을 조속히 쓰라'는 도교육청의 지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공문에 따르면 5월 말 학교회계 세출예산 목표 집행률은 30%였으나, 등교개학 지연과 학교 밀집도 최소화를 위한 순차 등교(격일·격주·주별 등) 영향으로 전체 학교 평균 집행률이 17.48%로 저조합니다.

도교육청은 '기획재정부, 감사원 등 외부기관에서 학교회계 재정 운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점' 과 '코로나19 감염병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기관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 예산도 적극 집행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B 씨는 이 같은 도교육청의 방침은 학교 현장의 실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지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A초등학교는 작년 3∼5월 상수도 요금으로 250만 원을 냈습니다.

그러나 올해 같은 기간 상수도 요금은 18만 원으로 작년의 1/10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등교 개학 연기로 급식이 중단되면서, 학교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도 확 준 것입니다.

전기료도 작년 같은 기간 1천300만 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800만 원 나왔습니다.

공공요금뿐만 아니라 식자재비 등 급식 관련 예산도 작년 1억2천만 원에서 올해 3천500만 원으로 집행 규모가 쪼그라들었습니다.

전체 학교 예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교육활동 관련 예산(목적사업비) 집행도 '올스톱'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생존 수영 교육사업 예산 300만 원은 아직 한 푼도 쓰지 못했습니다.

B 씨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집행률을 올릴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고 예산을 신속하게 쓰라고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8월까지 집행률을 63%, 12월까지 85%까지 올리라는데, 요즘과 같은 감염병 상황에서 예산 집행률은 한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학교로서는 급하지 않은 리모델링 공사나 프린터 잉크, 종이와 같은 비품 구매와 같은 소모적인 방법으로 집행률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도교육청이 집행률 향상에 몰두하는 이유는 교육부가 집행률로 시도교육청별 순위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교육청 예산담당자는 "교육부가 작년부터 학교 재정 건전성 및 효율적 집행,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학교회계 조기집행(상반기 집행률)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보름마다 시도별 현황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도교육청의 학교 회계 집행률 실적이 전국에서 꼴찌인데, 이는 학교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불리한 측면이 있고 최근엔 예산 규모가 큰 체육관 설립 사업이 많아 예산 집행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교육부가 경기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학교회계 집행률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부의 설명은 조금 달랐습니다.

교육부 지방교육재정 담당 관계자는 "작년부터 학교회계 조기집행을 강조한 것은 맞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며 "작년엔 보름에 한 번씩 관련 자료를 받아 확인했지만, 올해는 코로나 전후 상황을 비교하기 위한 취지로 딱 한 차례 집행률 현황을 받은 게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경기교육청지부 이상혁 부지부장은 "모든 것이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도 도교육청은 학교회계 집행실적이 저조하다고 한다"며 "학교 실정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강요만 한다면 자칫 낭비적인 요소가 나오지 않겠느냐"며 "도교육청은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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