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초창기일수록 창업가들이 건강을 잘 돌보지 않는 것 같다. 완전히 지쳐버리는 '번아웃'이 오기 전에 창업가가 스스로 돌보는 법을 꼭 익혔으면 좋겠다"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넥스트 라이즈' 행사에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사진 왼쪽)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자격으로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대표는 현장에서 초기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받아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대표는 "마켓컬리를 창업한 2014년 말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냐"는 질문에 "창업 초기에는 회사 일이 너무 많다보니 건강을 돌보지 않아 2017년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을 때 즈음에는 번아웃이 왔다"면서 "건강관리나 명상을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마켓컬리가 첫 투자를 유치하기까지 100명이 넘는 투자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고도 털어놨다. 수십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보니 끝에는 옆에서 콕 찌르면 발표내용이 바로 나올 정도였다.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해도 투자자들은 신선식품을 밤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배송해주는 마켓컬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만 돌려주곤 했다. 김대표는 "당시 공동창업자와 함께 투자자가 많이 있는 테헤란로를 한번 돌고 나면 힘이 쫙 빠졌다"며 "인근 백화점에서 한잔에 1000칼로리가 넘는 초콜릿 음료를 먹어야 에너지가 보충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김대표에 따르면 마켓컬리는 초기에 투자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김 대표는 "대체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분들 중 장을 보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 컬리의 모델을 이해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며 "'누가 이걸 쓰겠냐', '경쟁이 치열하지 않겠냐'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표는 수많은 거절도 그에게는 지금까지 사업을 운영해 온 힘이 됐다고 말했다. 풀리지 않는 어려운 과제가 닥칠 때마다 '그래,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니 힘이 든 거야'하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6년을 버틴 현재 마켓컬리는 지난해 기준 4289억원의 매출과 500만명의 회원수를 기록한 회사가 됐다.
1983년생으로 올해 37세인 김대표는 최근 1990년대생 직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업무 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에피소드도 공유했다. 김대표는 스스로의 업무 스타일을 '옛날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정해진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있고, 필요한 자리에는 조금 미리 가는 등 유연한 근무에 익숙한 세대는 아니라는 것. 그러나 김대표가 일하는 팀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1990년대생 직원들은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했을 때 더 작업 능률이 오른다는 것을 그는 최근 깨달았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재택 근무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며 "업무 관련 자료도 메일로 보내라고 하는 것 보다 메신저 서비스인 '슬랙'을 통해 자유롭게 보내도록 했을 때 더 효율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진 기업공개(IPO) 계획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당장은 없다"고 일축했다. 김 대표는 "지금처럼 사모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에서 공모시장으로 넘어가면 회사 입장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던지 집중할 수 있는 과제가 달라지는데, 회사나 이사회 의견은 아직 사모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편이 더 좋는 쪽이라 IPO준비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이나 M&A 등 이른바 '엑싯'도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니즈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김대표는 "다만 투자자들은 언젠가 엑싯(투자회수)을 원할 수도 있다"며 "이분들이 원하는 엑싯의 타이밍과 회사가 이뤄야 하는 꿈의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며 "그걸 잘 조율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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