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80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은 밤에 잠들기 어렵거나 잠자는 도중에 깨는 '불면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화로 인한 신체기능 저하와 정서적 소외감이 원인으로, 고령일수록 불면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구 고령화로 노인 불면증 환자는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노년기 삶의 질과 직결되는 수면 건강을 적절히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석훈·울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심창선 교수팀은 대규모 인구 기반의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2005~2013년)을 바탕으로 불면증 환자의 연간 신규 발생률과 유병률을 분석한 결과, 2013년 기준 노인의 불면증 유병률이 △60대 10.28% △70대 15.22% △80대 이상 18.21%로 집계됐다고 23일 밝혔다. 60세부터는 10명 중 한 명, 80세 이상은 5명 중 한 명 꼴로, 고령으로 갈수록 불면증 환자가 크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나머지 연령대별 불면증 유병률은 △20대 1.58% △30대 2.59% △40대 3.74% △50대 6.50%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에 비해 신체활동이 급격히 줄어들고 소화기나 호흡기, 근골격계 기능이 저하된다. 반면 소외감이나 불안감 같은 정신적 문제는 늘어난다. 이러한 요인들이 노인 불면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판단된다.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불면증을 앓고 있는 20세이상 성인의 비율은 2005년 3.1%에서 2013년 7.2%로 증가했다. 이는 지난 10년새 국내 성인의 불면증 유병률이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불면증 유병률이 늘어난 것은 인간관계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카페인 섭취 증가 등으로 매년 신규 환자 발생이 꾸준히 증가한 데다, 기존 환자도 불면증을 방치하지 않고 병원에 방문해 수면 교육이나 수면제 처방을 받는 등 지속적인 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특히 노인은 과거에 불면증이 질환이라는 인식이 부족해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것으로 치료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불면증이 치매와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으로 알려지면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노인이 많아진 것으로 짐작된다.
성별 불면증 유병률을 보면 여성은 2005년 4.94%에서 2013년 7.20%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남성은 2.79%에서 4.32%로 늘었다. 여성은 성 호르몬 영향으로 남성에 비해 우울증을 가진 비율이 높은데, 이러한 우울증이 여성 불면증 발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조사기간 내 불면증 환자의 사망률은 5.7%로 불면증이 없는 일반인의 사망률(3.6%) 보다 조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불면증이 사망률을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신체 기능이나 면역력, 정신적인 회복도가 종합적으로 저하돼 있다. 불면증을 방치할 경우 기저질환이 악화된다거나 새로운 질환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건강문제를 겪을 수 있다"며 "다행히 최근에는 불면증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치료하려는 노인 환자가 많아졌다. 불면증은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병이므로, 병원을 방문해 잘못된 수면습관을 교정하고 스트레스와 불안을 제때 해소하는 게 우선이다. 비약물적인 치료에도 효과가 없다면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 하에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정신의학연구(Psychiatry Investigation)' 최근호에 게재됐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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