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곤궁에 빠뜨린 볼턴…트럼프 입장선 "전쟁 미치광이"
입력 2020-06-19 12:00  | 수정 2020-06-26 12:07
존 볼턴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 앞표지.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
이 한 줄의 책 제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는 11월 대선 승부에 최대 위협으로 등장했다.
저자이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보필했던 존 볼턴의 펜끝이 트럼프의 외교안보 리더십을 '총체적 무능'으로 몰고가는 흐름이다.
한국 입장에서 그의 회고록 내용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북미 간 협상 부분이다.
보수 관료인 볼턴은 북한에 대해 선제 타격론을 주장해온 그야말로 극단적 매파다.

CNN 등 현지매체 보도를 보면 볼턴은 회고록에서 지난 2018년 6월 북미 1차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조차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너무나도 합의를 원해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를 밑도는 위험지대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미 협상 관련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적 태도를 비판하는 볼턴의 주장에 대해 "존 볼턴이라는 관료가 갖는 비정상적 성향도 고려해 회고록 내용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외교·안보에 무능한 '비즈니스맨' 수준으로 치부하고 있는 존 볼턴을 상대로 과거 '대통령에게 전쟁을 요구하는 미치광이 관료' 수준으로 평가한 바 있다.
볼턴이 경질되기 석 달 전인 지난해 6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군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를 격추한 데 대한 보복조치로 대이란 타격작전을 개시할 태세였다. 그런데 보복작전이 성사될 경우 이란 내 사망자가 150명에 이를 것이라며 미 합창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글로벌호크 격추 피해와 대비해) 비례적이지 않다"고 보고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개시 10분 전 작전을 중단했다.
당시 트럼프는 합참의장을 "멋진 남자이며 훌륭한 장군"이라고 추켜세운 반면, 볼턴 보좌관에 대해서는 "매파이고 대개 강경한 입장"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측근들과 사적 대화에서 자신의 참모들 중 매파를 겨냥해 "이 사람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가길 원한다. 정말 역겹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이란 보복공격을 포기하고 8일 뒤인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전쟁을 부추기는 매파 참모를 견제하려는 트럼프의 의지는 그대로 포착됐다. 향후 북미 관계에 중대 분수령이 될 당시 회동에 볼턴을 데려오지 않고 엉뚱하게도 폭스뉴스 앵커인 터커 칼슨을 동행시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유력 언론계 인사로 알려진 칼슨은 대이란 보복공격 문제에 대해 "매파의 말을 듣고 공격을 감행하면 재선에서 실패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슨 스스로도 당시 방송 중 대이란 공격을 주도했던 볼턴을 상대로 '관료적 기생충(bureaucratic tapeworm)'이라고 비판했다.
볼턴은 1982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법무부 차관보를 역임하고 조지 W 부시 정부에서는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 유엔 대사 등을 역임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2년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인물이자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의 극렬한 신봉자로 꼽힌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전쟁광으로 통하는 볼턴을 안보보좌관에 배치했을까.
외교안보전문가들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대북 협상의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볼턴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프트한 협상 태도를 보완하는 동시에 핵무기 카드를 쥐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상시적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보수 매파 관료인 볼턴을 기용했다는 것이다.
현지매체들은 볼턴 기용 수 개월 후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의 전임자였던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정책적 조언을 구하고 '당신이 그립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세계지식포럼에 초청돼 한국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 전임 보좌관 출신 고위 인사도 매일경제와 만나 "트럼프는 단 한 명의 미군 병사가 해외에서 사망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 한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향하는 나름의 애국심"라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철군, 대이란 보복공격 중단, 북한의 리비아 모델 (비핵화 유도 과정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몰락) 반대 등 트럼프 대통령이 물리적 충돌을 극도로 꺼리며 이와 반대 목소리를 내는 볼턴을 배척한 것도 이 같은 트럼프 특유의 정신세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경질된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시설이 이란으로 추정되는 배후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점을 거론하며 "작년 여름 대이란 보복공격을 했다면 이란이 이번 사우디 정유시설에 손상을 입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으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한·이란을 상대로 한 그 어떤 협상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 두나라가 협상에서 원하는 건 오로지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이기 때문"이라는 볼턴의 매파적 조언을 수용했다면 지난해 트럼프·문재인·김정은 간 판문점 회동은 역사책에 기술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볼턴의 주장이 얼마나 사실에 근접하는지 여부를 떠나 결국 모든 책임은 전문 관료가 아닌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면서도 "존 볼턴이 매파·네오콘(신보수주의자) 수준을 넘어 극단적인 수준으로 호전적인 인물이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이재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