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마리 앙투아네트와 쿠팡의 경우
입력 2020-06-16 09:49  | 수정 2020-06-23 10:07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는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에게서 태어난 16남매 중 14번째였다. 딸들 가운데서는 11번째로 막내 딸이었던 그녀는 뛰어난 미모에 총명하고 사려가 깊어 어려서부터 황실의 자랑이자 비엔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공주였다. 그녀의 일상생활은 늘 검소했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동정적이었으며, 기품 있는 태도가 몸에 밴 '준비된' 리더였다. 뭇 귀족 가문의 며느리 후보 1순위이기도 했다. 앙투아네트는 이런 평가를 계속 받았기 때문에 14살 나이에 합스부르크가의 경쟁자인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을 할 때까지만 해도 유럽 정치와 문화를 이끌 신예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 그녀의 운명은 하루 아침에 완전히 바뀌었다.
낡고 부패했던 프랑스 왕정은 혁명 세력의 척결 대상으로 전락했고, 그 한가운데 앙투아네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졸지에 사치와 방탕, 증오와 멸시의 상징이 됐다. 다이아몬드 사기, 왕실 금고 탕진, 간첩 혐의 등 여러 가지 죄목이 씌워졌고 급기야 9살짜리 아들(왕자)과의 근친상간이라는 패륜의 천형까지 덧붙여졌다. 거기에 빵을 달라고 항거하는 굶주린 노동자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중의 집단적 분노와 증오는 극에 달했다. 그녀는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런데 역사 자료들은 그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백성을 소중하게 여긴 현명하고 검소한 왕비였다는 것을 전해준다. 그녀는 공공의 희생양이 필요했던 혁명 시대에 조작되고 과장된 소문에 휩쓸리고 군중들의 편견까지 가세하면서 성난 여론의 먹잇감이 된 비운을 겪었던 셈이다. 왕실의 방만한 재정을 바로잡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은 오늘날로 치면 '혁신'이라고 해야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옭아매는 함정으로 변질돼 대중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말았다.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얘기를 꺼낸 것은 부천 물류센터 직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쿠팡에 앙투아네트의 그림자가 겹쳐져서다. 한 때 코로나19 사태 완화의 '1등 공신'으로 추켜세워졌던 쿠팡은 확진자 발생 이후 하루 아침에 '국민 밉상'으로 전락한 듯하다. 쿠팡의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의 대응이 신속·투명하지 못했던 것은 질타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도권 집단감염의 온상이 쿠팡이라는 식으로 그렇게까지 심하게 매도 당해야 할 심각하고 의도적인 과오를 쿠팡이 저질렀는지는 의문이다.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온갖 루머와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집단적 사고 오류'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이 지점에서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쿠팡이 해왔던 여러 가지 일들을 되짚어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쿠팡의 면모를 들춰보는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쿠팡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늘린 일자리 수가 2만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말 3만개 정도였던 쿠팡의 일자리는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들어 석달 만에 2만개가 더 늘어났으니 놀랍다. 이 일자리는 땀을 흘린 만큼 보상받는 것들로 쿠팡이나 쿠팡의 자회사가 직접 계약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쿠팡 일자리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정규직이거나 계약직이거나 같은 형태의 복지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쿠팡에서는 계약직을 흔히 외부에서 생각하듯이 비용절감을 위해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간 때문에 부득이 하게 채택한 형태로 본다. 쿠팡 사측이 일용직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홍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일용직이 안정적으로 출근하는 게 사측에서 볼 때도 물류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데 좋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소득, 취약 계층에게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대량해고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실업률이 3.5%의 완전고용 상태에서 한달 만에 13%로 올라섰을 때도 한국은 달랐다. 그 뒤에 자리잡고 있었던 게 쿠팡 같은 기업이다. 단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생계수단을 찾아 간 곳이 바로 쿠팡플렉스였다. 쿠팡플렉스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등록한 인원만 10만명이 넘는다. 하루 수입은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7만~10만원 정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3개월 유급 휴직에 들어갔던 항공기 조종사도 쿠팡플렉스를 통해 하루 7만5000원을 버는 자리를 찾기도 했다고 한다. 이 정도 양질의 일자리는 어떤 정부도 쉽게 만들어 내기 힘들다. 앞으로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실업 충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 와중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는 쿠팡 같은 기업이 있다는 것은 훌륭한 안전판이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미국 등 외국에서 빚어졌던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한국에서 나타나지 않은 데에도 쿠팡의 역할이 적잖았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은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쿠팡과 같은 e-커머스 기업의 신속배송 서비스가 한 몫을 했다는 얘기다.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간단하게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을 하루 만에 배송 받는 것은 세계적으로 한국을 빼놓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쿠팡을 비롯한 물류 혁신기업으로 인해 한국은 전세계적인 감염병 파동 속에서도 사회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 봉쇄 초기에 발생한 사재기 현상 때문에 폭동을 비롯한 사회적 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을 보면 한국은 완전히 딴나라였다. 정부가 맡아서 해줘야 할 사회 안정 기능을 유통기업이 해냈으니 대단한 일이다.
물류 혁신의 선두에 쿠팡이 있다는 것도 새겨봐야 한다. 국내에서 혁신은 대체로 대기업보다는 신생기업의 몫이었다. 롯데, 신세계,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기업들이 기존에 구축한 유통망을 통해 이익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을 때 쿠팡 등 혁신적 유통 신생기업이 "다양한 제품을 보다 싸고 빠르게, 안심하며 사고 싶다"는 소비자 가치를 실현시켰다. 소비자 혜택을 중시하며 더 많은 혜택을 추구하는 혁신의 시발점은 누가 뭐래도 쿠팡이다. 쿠팡에게 자극 받아 생존 위기에 몰린 신세계와 롯데가 뒤늦게 온라인 주문과 배송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봐도 영향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유통 강자들이 대기업 마인드를 벗고 변신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쿠팡 같은 곳이 버티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물류센터 확진자 발생으로 곤경에 처한 쿠팡을 이대로 희생양 삼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확실한 방역체계를 갖추도록 압력을 가해 가면서 살릴 것인가, 쿠팡이 만든 일자리 창출·소비자가치 혁신·사회안정 효과를 인정하고 빈틈을 메우도록 채찍질을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을 외면하고 비난에만 매진할 것인가, 선택은 분명해진다.
이번에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생긴 작은 틈 때문에 얼마나 큰 파도가 밀려 왔는지 호되게 질타를 받은 쿠팡은 스스로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감염병 대응을 대폭 강화해 이젠 감염 가능성에 노출되면 임직원들을 즉시 자가격리 시키는 등의 조치를 바로 바로 취하고 있다. 특히 자가격리에 들어간 일용직들에게는 100만원씩을 지급하면서 생계 우려를 줄여 줬다. 이윤을 제1의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선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지만 쿠팡은 과감하게 실행에 들어갔다. 변화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쿠팡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자리를 지키는 첨병으로서 한단계 더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대중들도 집단적 흥분에 사로 잡혀 감정의 배설물만 쏟아내기 보다는 쿠팡이 더 양질의 유통·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건설적인 지적에 나서면 어떨까 싶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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