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김여정 위협에 美 국무부 "실망"…싱크탱크 "북한, 10월 도발 가능성"
입력 2020-06-14 15:41  | 수정 2020-06-21 16:37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주말 동안 연일 한국을 겨냥한 군사 위협 담화를 낸 가운데 미국 내 주요 싱크탱크(민간 연구소)들은 미국 대선을 앞둔 올해 가을 북한이 기습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무부는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실망을 표하면서 미군의 한반도 방위를 강조했다. 다만 가뜩이나 북한 비핵화 협상이 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을 줄이거나 미군 주둔 비용 인상 압박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어서 한반도 정세가 갈수록 복잡하게 꼬이는 모양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과 공영라디오(NPR)는 국제 정세 전문가들을 인용해 북한과 미국 간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갔으며, 북한이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앞서 12일 리선권 북한 외무상이 "미국의 군사 위협에 맞서 힘을 키우겠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 것을 양 측간 대화가 사실상 끝났음을 선언했다고 본 데 따른 전망이다. 이날 외무상 담화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연지 2주년을 맞아 북한 측이 낸 것이다.
13일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NBC 인터뷰에서 "오는 10월, 북한 측 기습 도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더 이상 북한 핵 위협은 없다"고 한 데 대해 "나중에 보니 그렇지 않았다. 정보 당국의 평가와 상업 위성 사진 등을 통해 파악해보니 북한은 핵분열 물질과 미사일 등 생산을 오히려 확대해왔고, 그 결과 핵무기가 8개 이상 추가로 늘어났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NBC방송은 '아름다운 친서에서 어두운 악몽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도박은 어떻게 파산했는가'라는 기사에서 클링너 선임연구원 뿐 아니라 미국 정보 당국 관계자와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연구원 등 전문가 분석을 종합해 북한은 핵탄두와 이를 운반할 미사일 구축을 결코 멈춘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차 석좌 연구원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 정상 간 만남이라는 '톱 다운'(하향식) 외교가 실패한 만큼 미국 차기 대통령은 더 복잡한 상황을 맞게 됐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북한 정권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협상 카드였는데 이 카드가 소진된 데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핵무기를 더 많이 보유하게 됐기 때문에 북측 요구 사항을 더욱이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애초에 북한은 제재 완화를 대가로 핵무기를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정치 유세에 도움이 되는 뉴스를 주는 것 정도를 생각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같은 날 NPR도 '싱가포르 회담 2년 후 미국·북한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기사를 통해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준비해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조지 W. 부시 정부에 이어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NPR인터뷰에서 "나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지원 제안을 응원했고 대통령을 신뢰했다"면서도 "하지만 미국이 최근 20여년 동안 북한에 대해 노력한 모든 것이 결국 허사가 됐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에서는 12일 리선권 외무상의 담화 이후 13일 김 제1부부장이 나서서 또 한 차례 한국을 겨냥한 군사 행동을 예고했다. 그는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듯 하다"면서 "나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여 대적 사업 연관 부서들에 다음 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하였다. 우리는 곧 다음 단계 행동을 취할 것이다. 다음 번 대적 행동 행사권을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군사 긴장을 유발하는 북한 측 공세에 대해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13일 "미국은 북한의 최근 행동과 담화에 실망하고 있다"면서 "한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굳게 유지될 것"이라는 반응을 냈다. 또 "미국은 북한이 도발을 피하고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며 "북한과의 관계를 두고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한반도 정세와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뉴욕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를 하면서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먼 나라의 오래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미군의 의무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의 기존 발언과 비슷하다. 다만 이번 발언은 최근 미국 내 정치적 위기를 앞두고 복잡한 국제 정세 문제와 거리를 두려는 취지에서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 정부는 독일 정부에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검토 중이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11일 독일 일간지 빌트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한국, 일본, 독일 등에서 미군을 데려오고 싶어 한다. 이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해 눈길 끈 바 있다.
현재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은 교착 상태다. 미국 쪽에선 한·미 공동 방위비 인상 혹은 주한 미군 감축설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미국 연방 의회는 '2020년 국방수권법'을 통해 주한미군을 현재 수준 2만8500명보다 적게 줄이지 못하도록 제한했지만, 예외 조항도 있다.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역내 동맹국들 안보를 상당히 해치지 않으며, 한국·일본과 적절한 논의를 거쳤다고 국방 장관이 의회에 입증하면 주한미군을 더 줄일 수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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