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오늘(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검찰의 혐의 소명 여부에 대해선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검찰 주변에선 이 부회장의 불구속기소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사실관계와 유·무죄 여부는 본안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이 부회장 측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원회 소집이 기소 여부의 변수가 될 가능성은 남아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에서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이 부회장과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은 400권 20만쪽 분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게 영장 재판인 만큼 법원은 이 부회장 등의 혐의가 인정되는지에 관해 기록 전체를 모두 꼼꼼하게 검토했다기보다는 현 단계에서 구속이 필요한지를 중점적으로 따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법원이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문구 대신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문구를 쓴 것은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이고 기소가 예상되는 만큼 본안 재판부에 후속 판단을 넘기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1심 재판의 구속기한이 6개월인데 수사기록도 많고 양쪽이 첨예하게 다투는 상황인 점 등을 고려하면 무리하게 구속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원이 혐의를 인정했는지에 관해서는 입장이 엇갈립니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객관적인 사실관계만 인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 우세하지만, 전체적인 취지상 혐의가 인정됐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영장전담 경험이 있는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혐의 인정 여부는 다툼이 있어 영장 단계에서는 언급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을 통해 혐의가 어느 정도 확인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범죄와 무관한 사실관계란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봐야 한다"며 "영장 단계에서 소명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는 충분히 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며 "사실관계 소명은 합병 등에 국한된 것이고 이 부회장 등의 불법행위 여부는 재판에서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불구속기소를 염두에 두고 공소유지를 위한 보강 수사가 불가피해졌습니다. 합병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은 내용이 복잡해 검찰 입장에서도 유죄 입증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다만 법원도 언급했듯 검찰이 1년 7개월에 걸친 수사로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고, 이 부회장이 사실상 수사의 종착역이었던 만큼 추가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부분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아직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불구속기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법리 검토와 공소장 작성, 기록 정리 등 수사 마무리 작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일단 이 부회장 등을 구속수사할 필요성까진 없다고 본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소 전까지 혐의 다지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회장 측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은 이 과정에서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모레(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할지 여부에 관해 결정할 방침입니다.
삼성은 수사심의위 절차에서 검찰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불기소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그러나 법원이 이례적으로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서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언급함에 따라 부의심의위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부회장이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의 최종 지시자라고 보는 검찰 입장에선 설령 수사심의위가 열리고 불기소 결정을 권고한다고 해도 권고에 따라 불기소 처분을 내릴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수사심의위의 결정도 권고에 그칩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