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김정은 위원장 비방 금지법`은 어떤가
입력 2020-06-05 09:31  | 수정 2020-06-12 09:37

김여정이 대북 전단지 살포를 맹비난한지 4시간여만에 우리 통일부는 브리핑을 열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준비중이라고 했고 청와대는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이라고 했다. '총선 177석의 후과가 이런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삐라 금지법을 만들더라도 일을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4시간만에 브리핑을 열어 '윗분 명령' 떠받든다는 인상을 줄 필요도, 청와대가 국민 자존심보다 김정은 심기를 더 중시한다는 '오해'를 살 이유도 없다. 북측에 '이미 준비하고 있으니 심려 놓으시라'는 전통문 하나 보내고 조용히 법 만들면 된다. 굳이 브리핑해서 논란 살게 뭐 있나. 예전 같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정치적 형식마저 귀찮아진 것으로 보인다. 177석이면 헌법빼고 무슨 법이든 다 만들수 있다. 복잡하게 돌려 말하고 눈치보고 하기가 싫은 것이다. 삐라금지법, 백해무익 등의 말에선 '자꾸 이렇게 할래?'하는 짜증이 묻어난다.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국민을 향해 대놓고 짜증내고 화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77석이므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김여정이 한국 언론을 걸고 넘어지는 경우 말이다. 이번에 김여정은 전단 살포 단체를 '인간추물' '똥개' '쓰레기'라 욕했다. 그러면서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한국 언론들이 김정은 독재를 비판한다. 그리고 한국엔 기자들을 비하하는 다양한 욕들이 있다. 김여정이 그 욕중 하나를 빌어와 "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해 오면 어쩔 것인가.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 하면서 말이다(이번 담화에서 한국 정부를 겨냥해 김여정이 쓴 표현이다).
그랬을때 이 정부는 어떻게 나올까. 문화관광부 장관이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김정은 위원장 비방 금지법'을 준비중이라고 하고 청와대는 "근거 없는 대북 비판은 한민족 미래에 백해무익"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법 제정에 앞서 당장 시행할 보도준칙이 하달될지도 모른다. 가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표기시 위원장 호칭 생략은 원칙적으로 불허' 같은 것 말이다. 당연히 리설주는 '리설주 여사'로 써야 한다. 물론 지금도 많은 언론들이 꼬박꼬박 호칭을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크다. 설마 이런 일이야 생기겠나.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실없는 공상을 칼럼에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뉴스를 보면서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 위원장 비방 금지법'에 참고할 만한 법안도 있다.여당이 당론으로 추진중인 5·18 특별법에 따르면 5·18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 체제를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 벌금···' 그만 하자. 다시 말하는데 조크일 뿐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