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재난지원금이 사용 되는군요. 사실 이런 곳에 쓰라고 정부에서 내어준 것은 아니지만. 주 카드가 신한이어서 어끄제(엊그제) 동리엇(동대문메리어트) 숙박, 오늘 신라 망빙(망고빙수) 먹고 다 카드결제했더니 재난지원금으로 결제가 되더라구요.'
한 네티즌이 모 카페에 올린 글이다. 이 글에는 '피부과도 되더라구요. 내 얼굴이 재난이다 생각하고 시술받고 왔네요'라는 댓글까지 달려있다.
서울시내 특급호텔 대부분에서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해진 가운데 생계·소득 보장을 위해 지원된 재난지원금의 용처를 놓고 SNS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뜬금없이 호텔 용처 논란이 불거진 것은 날이 풀이면서 무더기로 등장하고 있는 '호캉스 인증샷' 탓이다.
정부는 재난지원금 지급 초기에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일부 업장에 대해 소득 지원 차원에서 사용을 허용했다.
이후 카드사와 특급호텔이 숙박을 포함해 뷔페 등 전 업장에 대해 재난지원금 사용을 확대하면서 지금은 5성급 호텔인 신라호텔 롯데호텔 JW동대문 메리어트호텔 반얀트리 호텔&리조트 등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서울의 시그니쳐 빙수. 4만원을 훌쩍 넘는다. [사진 = 그랜드하얏트남산]
재난지원금 정의는 이렇다. 정부 관련 사이트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국민들의 생계와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에서 시행하는 현금 지원 대책'으로 명시돼 있다.이 정의 대로라면 용처는 명확하다. '생계와 소득을 보장'하는 선이 된다. 그 이상의 영역에 소비를 하게 된다면 재난지원금의 원래 성격과는 다른 용처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용처 논란으로 시끌벅적 한 곳은 각종 인터넷 카페와 SNS다. 특급호텔 숙박과 함께 업장에서 여름용 빙수를 먹은 인증샷이 속속 올라오면서부터다.
'허세그램'의 대명사가 된 서울 신라호텔 망고빙수는 개당 가격만 5만원이 넘는다. 그랜드하얏트가 시그니처로 선보인 빙수가 다른 호텔 빙수도 2~3만원 선이다. 하룻밤 방값은 30~40만원대다.
재난지원금이 오히려 '사치성 소비'와 '허세성 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올 만 하다.
이런 SNS사진을 볼 때 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회사원 박철현(47)씨는 "재난지원금이 착한 소비가 아니라 오히려 나쁜 소비를 부추긴다"며 "재난 지원이 '호캉스(호텔 바캉스)'를 의미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물론 찬성 여론도 있다. '코로나 블루'로 바깥 출입이 절실한 데, 한번쯤은 이런 호사를 누려봐도 되지 않냐는 반론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호텔이 대수냐. 호텔에서 놀고 (그동안 엄두도 못냈던) 피부과 치료도 받고왔더니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재난지원금 사용을 반겼다.
특급호텔 뿐만 아니다. 재난지원금의 사용처 논란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레스케이프 호텔이 선보인 캠핑형 호캉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최근까지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가구는 2010만가구, 지급 액수는 총 12조6798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24일 밝혔다. 지급 대상 2171만가구 가운데 92.6%가 지원금을 받아간 셈이다.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지 10일이 넘어서고 이처럼 대다수 국민들이 수령하면서 소비 진작에는 상당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용처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음식점, 숙박, 여행업 등 코로나 집중 타격 업종은 지원금 수혜가 거의 없는 반면, 비교적 충격이 덜하거나 오히려 특수를 누렸던있는 소매, 유통 분야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대기업 제품, 대형 마트 등에 대한 사용을 막다보니 경쟁관계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수혜를 입는 점도 여전히 논란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난 지원금이 특급호텔에서 호캉스를 하라고 준 성격은 아니다"며 "시행 초기인 만큼 시간이 조금 지나면 국민들의 의식도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익수 여행·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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