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n번방 방지법' 개정을 앞두고 일각에서 사적 검열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한상혁)는 관련 개정안이 시행되어도 사적검열의 우려가 없다고 15일 밝혔다. 앞서 인터넷기업협회 등 업계에서 보낸 공개질의서에 대해 답변 형식의 설명자료를 내고 반박한 것이다. 인터넷 사업자의 디지털성범죄물 유통방지 의무를 강화하자는 취지의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다음주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방통위는 "이번 개정안은 디지털성범죄물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삭제·차단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촬영물, 불법편집물(딥페이크물), 아동·청소년이용성착취물에 대한 유통방지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라며 "개인간 사전 대화는 검열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용자 사생활이나 통신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성범죄물이 한 번 유포되면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남기는 인터넷 특성상 빠른 차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인터넷기업협회는 방통위에 보낸 질의서에서 "불법촬영물의 유통 방지를 위해 사업자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통해 모든 이용자의 게시물 및 콘텐츠(이메일, 개인 메모장, 비공개 카페 및 블로그, 클라우드, 메신저 등)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인지 물었다. 방통위는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불법촬영물, 불법편집물 및 아동·청소년이용성착취물(제22조의5제1항에 따른 '불법촬영물 등')'이며, 이를 인식한 경우 삭제와 접속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를 할 의무가 있지만 사업자의 자체적인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최성호 방송통신위원회 사무처장이 15일 방통위에서 열린 `n번방 방지법` 관련 브리핑에서 인터넷기업협회 등의 질의서에 대한 방통위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방통위]
일각에서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디지털성범죄자들이 규제가 강화된 인터넷서비스 대신 대포폰 등을 통해 공범자를 모으고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불법촬영물을 전송하는 수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경우 통신사의 SMS, LMS 등 문자서비스도 같은 규제를 받는지 업계는 궁금해하고 있다. 방통위는 "불법촬영물 등에 대한 사업자의 유통방지 의무는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를 대상으로 부과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이에 따르면 개인 간 주고받는 문자서비스 역시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확한 범위를 정해줬다.대포폰 등을 통해 불법촬영물을 전송하는 수법으로 유포한 자는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14조 등에 따라 불법촬영물을 영리목적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정보통신망을 통해 반포 등을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벌칙규정을 적용받게 되며, 이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강화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2020년 4월 29일)했으므로 유포자도 강력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방통위는 예상했다.
이날 방통위가 배포한 설명자료에는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해 사업자들이 취해야 할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무엇인지도 나와 있다. 방통위는 "이용자가 불법촬영물 등을 발견하면 사업자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불법촬영물 등이 서비스 내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인식하고 이용자가 검색하거나 송수신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 경고문구 발송 등을 고려하고 있다"며 "방통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심의위원회 등과 사업자가 기술적 조치 등에 활용할 '(가칭)표준 DNA DB' 개발을 논의중이다. 향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사업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우려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n번방 사건을 촉발한 텔레그램 등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질의에 대해서는 "법제를 정비해 해외사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집행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조사와 행정제재를 실시하고, 국내외 사업자에 대한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 등 다양한 제도를 적극 활용해 해외 관계 기관과의 국제공조를 확대하는 등 해외사업자에도 차별없이 법이 적용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무조치를 해야 하는 규제대상 사업자는 전기통신역무의 종류, 사업규모 등을 고려해 정하되, 향후 업계 의견을 수렴해 범위를 구체화 한다는 방침이다.
방통위 권리감독 권한이 글로벌 사업자에게는 한계가 있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해외사업자에도 의무가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에 역외적용 규정이 도입(2019년 6월 25일 시행)됐고, 정보통신망법상 국내대리인 지정제도(2019년 3월 19일 시행)가 신설되었으며,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도 역외적용 규정 등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다만 텔레그램의 경우는 해외사업자 중에서도 사업장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특수한 경우다. 향후 수사기관, 해외기관 등과 협조하여 규제집행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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