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포문 연 美·中반도체 경쟁` 중국 SMIC, 차이나머니 모집나서…미국 "인텔·TSMC 유턴 추진"
입력 2020-05-11 11:54  | 수정 2020-05-12 12:37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사태를 계기로 미·중 경제패권 다툼이 반도체 분야에서도 본격적으로 포문을 여는 모양새다.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가 한국 삼성을 비롯해 미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인텔, 대만 TSMC 고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고,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이자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가 신주 발행을 통해 차이나머니 모집에 나서기로 했다. 이미 두 나라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달러화·위안화 돈풀기 경쟁에 나선 가운데 정부는 시중 유동성을 기술 부문 투자에 대거 끌어다 쓰겠다는 전략이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텔과 TSMC가 미국에 새 공장을 짓는 방안을 두고 연방 정부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부터 '중국'을 적극 견제해왔는데 이번에 트럼프 정부가 미국 유치를 원하는 업체는 한국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 대만 TSMC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가진 기업은 이들 세 업체 정도가 꼽힌다.
이와 관련해 인텔은 '좋은 기회이며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냈다. 지난 달 28일 인텔의 밥 스완 최고경영자(CEO)는 국방부에 서한을 보내 "인텔이 상업용 반도체 칩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데 국방부와 협력할 것"이라면서 "최근 지정학적인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미국 내 핵심 제품 생산과 미국의 기술 주도력 유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파운드리란 '수탁 생산'으로도 불리는데, 반도체 설계업체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TSMC는 "미국 등 모든 지역을 눈여겨 보고 있지만 공장 짓기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다"면서도 "해외 공장 건설 가능성은 있다"고 언급했다. TSMC는 애플과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주요 기업에 시스템반도체를 납품하고 있다.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 절반 이상을 점유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 오스틴에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다.

WSJ는 "미국 연방 정부가 코로나19 부양책 우선 순위에 반도체 업계를 포함해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그간 미국 내에서는 국방부와 주요 부처들이 민간 산업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중국에 의지하는 것은 안보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례로 국방부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미국 디지털 경제는 대만과 중국, 한국 세 나라에 의존하고 있는바,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 산업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이번 움직임도 미국 정부가 '중국에 치우친 글로벌 공급망을 바꾸겠다'는 취지로 기업 유턴(U턴)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왔다. 앞서 3일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가 중국에 직접 진출해있거나 중국에서 위탁생산을 하는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국무부와 상무부 등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한 바 있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도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자국 기업과 중국을 제외한 제3국 기업들을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철수시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한국·호주·인도·뉴질랜드·베트남·일본과 협력해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을 재구성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이자 중국 내 최대 반도체기업인 SMIC가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 본토·홍콩 증시에서 대규모 자금 끌어모으기에 나섰다는 소식이 나왔다. WSJ에 따르면 SMIC 이사회는 지난 주 16억9000만 주 새 주식 발행(신주 발행)을 승인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신주 발행 승인이 미국과 중국 간 제2차 무역갈등 거리인 기술 전쟁에 대비해 '차이나 머니'를 끌어모음으로써 자체 자금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SMIC 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뉴욕 증시(나스닥)에서 상장 15년만에 자발적으로 상장 폐지한 후 현재는 홍콩 증시에 상장돼있다. 이어 최근에는 상하이증권거래소 과학혁신판 추가 상장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미국 투자분석업체 번스타인은 SMIC가 이번 신주 발행을 통해 약 24 억 달러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본 반면 중국 국무원 산하 구오센 증권은 30억 달러 모금을 기대하고 있다.
SMIC의 신주 발행 계획은 특히 대만 TSMC와의 경쟁을 의식한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미·중 무역전쟁 한 가운데 선 중국 이동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비해 일부 주문을 TSMC에서 SMIC로 바꿨다. 또 지난 해 중국은 자국 제조업체 지원을 위한 보조금 지급·세금 삭감을 단행했고 미국과 기술 격차를 줄이겠다면서 287억 달러 규모 '국가 반도체 기금'을 조성한 상태다. 중국 정부는 올해까지 자국 반도체 자급률을 40%까지 높이고 2025년에는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나선 가운데 오는 21일부터 열리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는 미국과 중국간 통화·기술 패권 경쟁 포문을 여는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 뿐 아니라 중국 정부도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5G(차세대 네트워크)와 AI(인공지능), 전기자동차, 산업용 로봇, IoT(사물인터넷) 등 '신(新) 인프라' 투자에 집중한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에서는 양회를 통해 대규모 성장촉진책이 나오면 이에 '베팅'하겠다는 차이나머니가 줄을 서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베이징 소재 자산운용사 로신(Rosin)의 왕 롱신 총괄책임자는 지난 7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인프라부터 디지털 부문에 이르기까지 내 레이더에 수십 개 기업이 들어와있다"면서 "지금은 (양회와 관련해)투자 타이밍을 재고 있으며 주가가 5%이상 떨어진 주식부터 매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해 8월 출범한 중국 사모펀드 종강인런(Zhonggang Yinrun)은 올해 들어 5G와 전기 자동차, 의약부문 주식을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75%로 늘렸고 조만간 90%까지 늘릴 예정이다.
한편 10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1분기 통화정책 보고서'를 통해 지난 해 4분기까지 강조했던 "과도한 유동성을 경계해야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대신 전례없는 위기를 맞아 경제 성장과 일자리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표현은 인민은행이 앞으로도 위안화를 시중에 대거 풀 것이라는 신호라는 게 글로벌 금융시장 해석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추가 부양책을 준비 중이다.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돈을 던지고 있으며(throwing money) 추가로 또 돈을 풀 것"이라고 하면서 "나의 두 가지 주요 검토 사항 중 하나는 급여세 감면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이득세 감면"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달 29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분기 경제 활동은 전례 없는 속도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3분기에는 경제가 반드시 반등해야 할 것"이라면서 "지금은 미국의 위대한 재정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당시 의장은 "연준은 연준의 권한이 절대적인 한계에 이를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면서 정부와 의회를 향해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에는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대규모 추가 재정을 주문한 바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재무부가 재정 확대 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를 대거 발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준이 기준 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트리는 시나리오를 언급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연준은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다만 금융시장에서 마이너스 금리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투자자들은 파월 연준 의장이 오는 13일 오전 9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온라인 경제현안 논의 자리에서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하고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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