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현대車 회사채 5배 수요 몰릴때…A급은 팔려면 `떨이`해야
입력 2020-04-30 17:59 
코로나19 여파 이후 국내 기업들이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투자 등급 A급 이상 신용도를 자랑하는 대기업 회사채도 기관투자가들에게 외면을 받으면서 기업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은 국내 대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는 서울 도심권 전경. [매경DB]
◆ 회사채 양극화 심화 ◆
지난 4월 13일 현대오트론이 A신용등급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수요예측을 마쳤다. 그러나 수요예측에 참가한 측은 모두 개인투자자일 뿐 기관투자가들은 KDB산업은행 외에 전무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이다 보니 경남 지역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았을 뿐이며 그동안 채권 수요예측에 주로 들어오던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나마 현대오트론은 500억원 규모 차환 발행이 아닌 초동 발행이어서 수요예측에 성공했지만 오히려 AA-등급인 한화솔루션은 발행액 2100억원 중 1500억원이 미매각됐다. 신용등급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산은 500억원, 우정사업본부 100억원 외에는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풍산 역시 산은 외에는 기관투자가 없이 개인투자자들만 수요예측에 참여했다.
A급 회사채 거래절벽은 주로 이들을 거래하던 증권사·자산운용사의 자금 부족에서 시작됐다. 금융기관 중 은행들이 보통 AA급 이상 회사채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A급 이하 회사채에 주로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월 중순부터 주요국 지수 하락에 따른 주가연계증권(ELS) 증거금 확보로 증권사들이 현금 여력 확충에 나서면서 회사채 투자에서 손을 뗐다. 한 채권시장 관련자는 "증권사가 5%짜리 기업어음(CP)을 찍어내고 있을 정도로 오히려 시중 자금은 다 빨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법인 머니마켓펀드(MMF)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현금을 확보해야 하니 가격 매력이 있는 회사채가 있어도 투자를 못하는 상황이다.
유진자산운용 관계자는 "지금 A급 회사채 금리가 올라 가격이 괜찮지만 거래가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현금화하기 어려운 채권을 선뜻 사려는 운용사는 없다"며 "지금처럼 운용사들이 환매 대금을 준비해 둬야 하는 상황에서 유동성이 떨어지는 채권을 매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는 최근 한 달간 회사채를 1176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2월 자산운용사가 회사채를 2조1093억원어치 순매수한 것과 대조적이다.
5~6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무보증 A등급 회사채 규모가 1조4300억원대인데, 차환이 발행되지 않으면 조달 금리가 더 뛰고 신용등급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오는 6월에 9900억원, 7월에 8950억원 등 A등급 회사채 만기 도래가 예정돼 있어 이달에도 계속 수요예측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면 기업 자금 부담이 심화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2013년 동양과 STX 부실 이후 시작된 회사채 시장의 우량물(AA등급 이상)과 비우량물(A등급 이하)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기관투자가들이 리스크 관리를 더욱 강화하면서 비우량물 금리 메리트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일례로 4월 중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에 나선 A등급 기업은 대부분 가산금리를 70bp 제시해 겨우 소화했지만 지난 29일 3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선 AA+등급인 현대차는 가산금리를 불과 2~3bp 제시했다. 그럼에도 발행 예정 물량 대비 5배에 가까운 1조4100억원이나 몰리며 큰 흥행을 이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이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다시 더 우량한 채권인 은행채 등에 투자하면 회사채 신용등급 간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들의 이자비용 증가로 오히려 순이익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A등급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AA-급 회사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다. AA-급 회사채의 국고채 대비 스프레드는 2012년 남유럽발 재정위기 이후 최고치인 91bp(지난 28일 기준)까지 벌어졌다.
전혜현 KB증권 연구원은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영향으로 90bp까지 확대된 이후 가장 높은 스프레드 수준인데, 당시 국채 3년물 금리가 3% 중반이고 지금은 1%인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스프레드 확대 폭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며 "특별한 재무안정성 이슈보다는 유동성 이슈가 반영돼 스프레드 확대 폭은 과도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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