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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변창흠 LH 사장 "LH, 공공디벨로퍼 변신…을지로 도심개발 나설것"
입력 2020-04-28 17:13  | 수정 2020-04-28 20:00
지난 17일 인천 남동공단 인근 행복주택(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단지에서 변창흠 LH 사장이 수요자 중심 주거복지 플랫폼을 설명했다. [이승환 기자]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포스트 코로나19 국면에서 대대적인 투자 주체로 주목받는다. 국내 최대 공기업 수장인 그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올해 국내 공공기관 총 투자액 60조원 중 39.5%(23조7000억원)의 사업비 투자계획과 16조5000억원의 공사 용역 발주계획을 편성했다. LH는 코로나19가 '경계' 단계에 진입하자 즉각 취약계층 지원안을 시행했다. LH 영구임대 13만3000가구의 임대료를 한시 유예하고 LH 임대상가 임대료도 25% 감면하며 2년간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동결했다. 지난 17일 인천 남동공단 인근 임대주택 단지 내 상가에서 변 사장을 만났다. 도시재생 전문가인 그는 기존에 막혔던 도심개발에 나설 채비가 한창이었다.
―코로나19 대응은 어떤가.
▷내부적으로 매출 감소 수준을 4단계로 나눠 시뮬레이션하며 장·단기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우리 자체가 안전한지 위험 신호도 모니터링 중이다. 금융위기 때와 달리 서서히 나빠지고 전 세계가 타격받는 상황이라 최악(심각) 단계까지 염두에 둔다.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우선순위 조정도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세계 권력 재편은 물론 생활과 주택, 도시 등에 미치는 여파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 교통량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유연근무로 여성 고용참여율이 높아질 긍정적 측면도 포착해 적응해야 한다.
―과거 LH 역할은 어땠나.

▷IMF 경제위기 때 2조6000억원 규모 토지를 매입해 환매했다. 위기가 본격화될 경우 부도 위기 기업을 위한 토지 매입과 환매, 부도 채권자들 주택 우선 매입, 가옥주·세입자 주거권 보호에 적극 나설 것이다. 미국 대공황 때 뉴딜사업이 사회복지와 토목사업에 기반한 고용창출책이었다면, LH 같은 공기업을 활용하면 사업성 부족분만 정부가 지원하고 회수하니 재정건전성과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정비·재생사업뿐 아니라 에너지 투자, 사회복지,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활성화가 가능하다.
―주거복지 로드맵 2.0 추진은.
▷2025년까지 장기임대 240만가구 확보 계획에 따라 정부 물량 168만2000가구의 74%(124만9000가구) 공급이 목표다. 매년 15만6000가구라 분당신도시(10만가구)의 1.5배씩 짓는 셈이다. 올해 재원만 8조7000억원이 필요한데 3월까지 2조3000억원을 조달했고 택지도 1000만평 확보해뒀다. 다만 도심 공급이 부족한 건 맞는다.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 사업 시행 모델이 중요하다.
―정비사업 공공성 강화 방안은.
▷LH가 종로부터 청계천, 을지로, 퇴계로까지 8개 블록 정비사업을 맡았다가 IMF 때 철수했다. 전면 철거 등 부작용 트라우마도 남았다. 그러나 도시재생법 개정으로 사업인정제도, 혁신지구, 총괄사업관리자제도가 포함돼 공공 디벨로퍼가 주도적 역할을 할 기반이 마련됐다.
―도심 정비사업에 적극 뛰어드나.
▷과거 도시재생뉴딜의 공기업 제안형에 참여했지만 사업이 적합하지 않거나 토지 확보가 어려워 힘들었다. 국토부가 각종 인센티브로 실효성을 높이니 서울가로주택정비사업 공모 제안에 23곳이나 접수해 고무적이다. 수도권 30만가구 공급 계획 중 LH 몫은 과거 5년간 서울 6000가구에 불과했다. 현재 2만가구 확보는 큰 변화다. 12·16 대책의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준공업지역 사업 활성화 방안의 실행안으로 공기업이 시행에 참여 시 인센티브를 주면 임대주택을 확보하며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고 도시도 재편될 것이다.
―공공 디벨로퍼는 실현 가능할까.
▷도시재생 과정에서 주민들이 참여의 주체는 될 수 있으나 실행력 있는 계획의 주체가 되긴 어렵다. 사업까지 가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복잡한 사업에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민간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아 들어오기 어려우니 LH가 그 역할을 맡는다. 최근 발표한 영등포 쪽방촌은 기존 공동체를 깨지 않는 정비법이 처음 시도됐다. 공공주택법을 통해 수용권을 발동해 토지 확보가 가능해진 게 핵심이다. 다른 정비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민간에도 실익이 클까.
▷주민 합의를 얻으려면 10~15년씩 걸리는데 공기업 참여로 3~5년에 해결된다. 선투자 리스크를 건설사들이 비용에 얹으며 고분양가와 비리 등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공기업이 매입확약 조건으로 금융비를 아껴 선투자하고 사업기간을 단축하면 비용이 30% 줄고 건설사도 시공·디자인 경쟁을 하면 된다. 민간 영역을 뺏는 게 아니라 리스크 때문에 진도가 못 나가던 것을 돌린다. 국가가 독점적 권한을 부여한 것도 민간 공정경쟁의 터를 닦기 위함이다.
―아직 성공 사례는 없지 않나.
▷도심은 일단 위험하고 임대료가 너무 높은 데다 물류 관리도 제대로 안돼 누군가 나서야 한다. 영등포 영진시장이나 세운상가 상인들이 개발 완료 전까지 임시 매장에서 생업을 이어가게 돕는 '순환재개발 모델'도 진행 중이다. 산업지역을 집적화해 새로운 혁신·전시·기획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1996년부터 방산시장 등 도심개발을 자문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중구청과 손잡고 충무로 등 도심 인쇄타운을 체계적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 중이다. 공공 디벨로퍼 활성화를 위한 '도시공업지역의 관리 및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이 마무리 단계로 20대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LH가 법적 권한이 많고 재정이 건전해 다행이다.
―플랫폼 기업 전환을 선언했다.
▷최근 2년간 LH 역할이 엄청나게 늘었지만 인력이 늘거나 자금 지원도 없고 대체할 주체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업무방식이나 사업모델 자체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주거복지부터 맞춤형 임대주택, 지역개발(지역균형발전), 해외개발, 리츠 같은 부동산금융까지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산 175조원에 정부와 같은 신용등급이라 안정적이고 전국 국토·도시 전 분야를 맡는다. 입주민 300만명 기반의 정보 네트워크도 훌륭해 여러 부처와 협업할 수 있다.
―해외 진출 플랫폼이 인상적이다.
▷과거 건설사들이 부정확한 정보로 해외에 진출했다가 망했다. 우리가 정부 대 정부로 계약을 맺어 리스크를 덜고 민간 기업이 진출하도록 길을 터준다. 해외 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미얀마, 베트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땅을 확보해 우리 기업들로 채운다. 사회주택(저가 공공분양 주택)사업도 유망하다. 해외 개발사업으로 일본은 민간 디벨로퍼, 싱가포르는 공기업이 돈을 버는데 한국 민간 디벨로퍼는 아직 관리·운영으로 돈을 버는 경험까지 못 갔다. 올해 초 글로벌사업본부를 신설했다.
■ "3기신도시 과천지구 유럽형 중정단지로 획기적 디자인 적용"
―3기 신도시 진행 차질 없나.
▷LH 안에 신도시부문을 준본부급 조직으로 만들었고 일정대로 순항 중이다. 다음달 부천대장지구까지 5개 지구 모두 지정이 끝나고 내년 지구계획이 확정된다. 3기 신도시에 대한 인프라 요구가 사업비보다 과도해 조정 중이다. LH가 인프라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되면 조성원가가 올라가 신도시를 개발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번 정부에서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마련돼 다행이다. 1~2기 신도시 문제는 3기 신도시를 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3기 신도시가 보완할 수 있다.
―미래형 도시로 화제를 모은다.
▷특히 유럽풍 중정형 단지를 시도하는 과천이 획기적이다. 기존에는 도시계획을 먼저 하고 토지이용계획을 짜고 필지를 쪼개 건축설계를 했다면 이번엔 '도시건축 통합 설계'로 공모해 도시 디자인 콘셉트를 잡은 다음 토지이용계획을 짠다. 정작 과천시가 낯설어하지만 신도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토지보상금을 신도시 조성에 재투자하는 모델도 시도한다.
―사업 추진 재정은 탄탄한가.
▷그동안 부채 감축에 노력해 기초체력은 충분하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집중적으로 돈이 쓰이는데 자본이 자꾸 늘어 부채율은 되레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수년간 당기순이익을 2조원 이상으로 유지하고 매출도 꾸준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진 부동산시장 안정세에 분양물량, 조기분양물량 등이 수익을 받쳐줬다.
-건설기술 등 미래 선도 역할은.
▷임대주택 공급도 가속화할 수 있어 모듈러 주택은 연 1만가구 이상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시장이 많이 변했고 선제적 투자로 원가를 낮추고 기술 발전으로 저렴해질 수 있다. 섬이나 재생사업, 해외개발에 적격인데 내화강도를 높여야 더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건설투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전한 중소기업이 육성될 수도 있고, 신기술이 발전될 수도 있다.
▶▶ 변창흠 LH 사장은…
△196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행정대학원 박사 △2000~2003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 △2003~2019년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2014년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2014년 11월~2017년 11월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2017년 12월~2019년 4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도시재생특별위원회 민간위원 △2019년 4월~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이한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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