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OPEC+ 감산합의 막고 사우디와 담판중...`다크호스` 멕시코의 속사정
입력 2020-04-12 17:37 

'집에 머물러주세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정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와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멕시코 암로 대통령./출처=대통령 트위터

국제석유수출기구(OPEC)과 비회원 주요 산유국 간 원유 감산 합의가 진통을 겪는 가운데 합의를 불발 시킨 멕시코의 사정이 국제 사회 관심을 끌고 있다. '증산 경쟁'으로 글로벌 시장 유가 폭락 사태를 만든 러시아와 OPEC 주요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합의했지만 비회원국인 멕시코가 자국에 할당된 감산량에 반대하면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이 '유가 상승'에 베팅하고 원유선물 상장지수증권(ETN)에 대거 투자하면서 감산 합의에 관심이 많다.
멕시코의 반대로 지난 9일 OPEC+ 감산 합의가 불발된 후 사흘 넘게 별다른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감산 합의·유가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멕시코 국영석유사 페멕스(PEMEX)를 조롱하는 합성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다만 '석유·에너지를 수입하는 산유국' 멕시코로서는 사우디의 감산 요구가 부담스러운 상...
블룸버그통신은 감산 협상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으며 논의는 주로 사우디와 멕시코 간 양자 협상으로 진행 중이라고 11일(현지시간) 전했다. 앞서 9일 OPEC+(OPEC과 10개 주요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 감산 긴급회의에서 합의가 막판 불발된 후 사우디 측 요청으로 열린 10일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 회의에서도 감산 논의는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하고 끝났다.
OPEC+은 9일 화상회의 당시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원유 수요 급감'을 이유로 5∼6월 동안 하루 1000만 배럴 감산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문제는 멕시코의 반대였다.
10일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대통령에 따르면 OPEC+는 멕시코에 하루 40만 배럴 원유 감산을 요구했다가 35만 배럴 감산으로 요구 수준을 낮췄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암로 대통령과 전화 통화 후 "멕시코는 원하는 대로 10만 배럴만 감산하고, 대신 OPEC+이 멕시코에 요구한 하루 감산량 40만 배럴 중 25만 배럴은 미국이 대신 감산하는 식으로 멕시코 부담을 덜겠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는 사우디가 G20회의에서 미국과 멕시코 간 합의에 반대했다.
멕시코가 10만 배럴 감산을 마지노 선으로 둬가며 강수를 둔 이유는 두 가지다. 블룸버그통신은 "멕시코가 지난 20년 동안 유가 급락에 대비해 '풋옵션'을 사들여왔기 때문에 유가 하락장에서 방어력이 있다"고 11일 전했다. 풋옵션은 미리 정해둔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권리다.
'집에 머물러주세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정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와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멕시코 암로 대통령./출처=대통령 트위터
가장 중요한 반대 이유는 암로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다. (▶관련기사 <감산 불발 'OPEC+회의' 비하인드 스토리…멕시코는 왜 박차고 나왔나>)블룸버그통신도 "멕시코의 풋옵션은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에 비밀 무기가 될 수 있지만 핵심은 원유 증산을 통해 에너지 산업을 키우겠다는 암로 대통령의 정책"이라고 전했다. '89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지난 2018년 12월 취임한 암로 대통령은 국영 석유사 페멕스 정상화를 핵심 과제로 삼고, 하루 평균 170만 배럴가량인 원유 생산량을 2024년까지 25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공언해왔다.
OPEC+긴급 회의를 앞둔 지난 5일 암로 대통령은 코로나19대책을 발표하면서 "국제 시장에서 원유 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멕시코에서는 하루에 40만 배럴씩 생산을 늘리게 할 것"이라면서 "타바스코 지역에서 도스보카스 정유소 건설이 착착 진행 중"이라면서 증산 의지를 강력히 내비쳤다고 현지 신문 엘피난시에로가 전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데 우리 원유를 굳이 수출해서 낭비하지 않을 것이며, 해외에서 연료를 사들이는 낭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유 수출이 아닌 내수 차원에서 자국 원유 생산을 늘혀서 연료 수입을 줄이겠다는 얘기다.
삼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은 지난 해 7월 멕시코 도스보카스 정유시설 공사를 수주했다. 암로 대통령은 '원유 증산'을 내걸고 정유시설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사진 출처=멕시코 밀레니오·삼성엔지니어링
멕시코는 산유국이지만 시설 노후화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에너지 생산 비용이 높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주로 석유 등 에너지를 수입해왔고 2015년에는 순수입국이 되기도 했다. 감산할 수록 멕시코는 석유 수입을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사정 탓에 로시오 날레 에너지부 장관은 "멕시코는 앞으로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10만 배럴까지만 감산할 수 있다. 지난 3월에 하루 평균 178만1000배럴을 생산했는데 앞으로 두 달간 168만1000배럴을 생산하겠다는 얘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우디와 멕시코의 신경전이 팽팽한 만큼 감산 합의와 유가 방향도 쉽사리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10일 G20장관 회의에서 압둘라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멕시코가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관점에서 봐주길 바란다"면서 "세계적 합의를 멕시코가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멕시코는 애초에 유가 폭락 사태를 일으킨 사우디나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 등 대형 산유국들이 감산폭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암로 대통령은 이달 초부터 사우디와 러시아를 향해 "인류를 향한 책임감을 지라"면서 결자해지를 강조해왔다.
OPEC+감산 합의는 원유 순수입국인 국내에서도 관심사다. 한국에서도 최근 한달간 개인 투자자들이 원유선물 상장지수증권(ETN)에 1조원 규이상을 투자했다. 유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투자자들로서는 감산 합의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만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유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회의론이 나온다. 원유 중개업체들은 하루 기준 원유 수요가 하루 250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우디와 러시아 등이 합의한 1000만 배럴 감산으로는 수요 급감에 따른 유가 하락을 막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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