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가계와 기업이 모두 역대 최대폭으로 대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도 크게 증가하며 가계의 자금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대기업 대출마저 크게 늘어나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8일 한국은행은 3월 가계대출이 9조6000억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4년 월별 속보치를 발표한 이래 가장 큰 폭이다. 직전 최대폭도 지난 2월(9조3000억원)로 두달 연속 최대치를 경신하며 가파르게 가계빚이 증가하고 있다.
역대 가장 큰 폭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난 주요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대출 폭증이다.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로 구성된다. 주담대는 6조3000억원 늘었으며, 기타대출은 3조3000억원 늘었다. 기타대출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부동산담보대출과 적금·주식담보대출 등으로 구성되는데, 코로나19로 경기가 얼어붙자 가계·자영업자·소상공인이 대출을 대폭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가계대출 폭증은 이미 국제기관에서도 경고를 던질 정도로 위험한 상태다.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의 모임인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팔랐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95.1%로 1년 전보다 3.9%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6조3000억원 늘었는데, 지난 2월 증가액인 7조8000억원보다는 증가폭이 줄었지만 2월을 제외하면 2015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중은행 대출 창구 [매경DB]
당초 한국은행은 은행 가계대출이 3월 이후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증가폭은 소폭 꺾이는 데 그쳤다. 강력한 대출규제 정책을 내놓고 코로나19로 경기까지 얼어붙었는데도 가계대출만 활활 타오른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서울 비고가아파트 및 수도권 거래가 계속 이어지면서 가계대출 증가규모는 예상보다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9억원 이상 아파트에 강력한 규제를 걸었지만 9억원 미만 아파트 값이 9억원 선까지 오르고, '풍선 효과'로 인해 서울 외 수도권 지역에서 거래가 늘어난 결과가 주담대 폭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기업대출을 두고도 우려가 나온다. 3월 기업대출은 18조7000억원 폭증했다. 가계대출과 마찬가지로 월별 속보치를 발표한 이래 역대 가장 큰 폭의 증가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이 10조7000억원, 중소기업이 8조원 늘었다. 개인사업자도 3조8000억원 늘었다.
일반적으로 기업 대출의 증가는 부정적으로만 해석되는 지표는 아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설비투자를 늘리는 등 매출을 더 키우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얘기가 다르다. 기업이 향후 경기를 비관적으로 봐 설비투자를 늘리지도 않는데 당장 매출이 급감하고 운전자금이 말라붙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막기 급급한 상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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