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코로나에 속타는 멕시코…지지율만 챙기는 `인기 대통령` 암로
입력 2020-04-07 17:33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멕시코 보건부가 포옹과 볼 키스를 하지 말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냈을 때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대통령은 대규모 집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안아주고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는 등 오히려 보건 경보와 거리를 뒀었다. [출처=대통령 트위터]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피해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멕시코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21세기판 '마셜 플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멕시코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위한 마셜 플랜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약탈적 금융이 아니라 개발과 협력을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한다"면서 "그런데도 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으로부터 어떤 것도 보고 듣지 못했다"고 에둘러 비난했다.
마셜 플랜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 동맹국을 위해 미국이 고안한 대규모 원조 계획을 말한다. 앞서 4일 암로 대통령은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신흥국의 코로나19 대응 지원을 위한 마셜플랜을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암로 대통령은 또 5일 저녁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 대응을 위해 재무부가 250억 페소(약 1조 2432억원) 규모 세금 감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예산 잉여금을 활용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주택 마련 자금 대출을 도울 것"이라면서 "앞으로 9개월 안에 일자리 200만 개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6일(현지시간)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한 직원이 코로나19 방역복을 입고 금융 중심가 레포르마 일대를 소독하자 한 행인이 날개 조형물을 배경으로 직원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출처=로이터]
하지만 국제 사회를 향해 마셜 플랜을 주장한 것 치고는 대통령의 경기 부양책이 추상적이고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엘피난시에로는 대통령이 말하는 대규모 공공 투자 등 '멕시코 시민 구출' 계획은 대부분 올해 회계연도 예산에 이미 포함된 지출을 일부 재조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우선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고 인기에 연연해 기업보다는 서민 유권자에만 치우친 대응을 내놓는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관광객이 줄어든 결과 멕시코 관광업은 올해 2000억 달러(약 244조 6400억원) 이상 손실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 공장을 비롯해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기업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소수 기득권과 기업에 부가 치우친 멕시코 특유의 경제 구조를 감안할 때, 서민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코로나19판데믹(전세계 대유행) 상황에서는 기업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보건 예산 삭감으로 공공 의료 체계가 더 취약해진 가운데, 멕시코는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중국에서 지원받는 상황이다. [출처=외무부 장관 트위터]
코로나19 대응책을 낼 때 기업과 서민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둘 지는 가치관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공 의료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봉쇄령 등 강경책을 내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조치를 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월 28일 보건부가 포옹과 볼 키스를 하지 말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냈을 때도 암로 대통령은 대규모 집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안아주고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는 등 오히려 보건 경보와 거리를 뒀다. 이후 멕시코가 국가 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지만, 대통령이 아니라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무부 장관이 선포했었다.
지난 2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암에 걸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살려달라"면서 약 지원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였다. 멕시코에서는 코로나19가 본격 덮치기 직전인 1~2월까지만 해도 저소득·어린이 의약품 부족으로 서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출처=멕시코 엘이코노미스타]
멕시코는 경제협력기구(OECD)가입국이기는 하지만 공공 의료 체계가 가장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가뜩이나 의약 업계의 고질적 독과점 구조와 정경 유착 문제로 부모들이 아픈 자녀 약값을 제대로 댈 수 없는 가운데 공공 병원과 보건소에서 저소득 층 지원용 기초 의약품과 백혈병, 당뇨병, 심장병, 암 치료제가 동나자 지난 1~2월 시민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암로 대통령이 '약 도둑'을 잡겠다면서 공공 의료 부문과 업계간 유착을 끊겠다고 나섰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코로나19가 덮쳤다.
멕시코 인구는 1억3000만여 명이지만 코로나19 치료 때 필요한 호흡기는 1만개 뿐이고, 인구 1000명 당 병상은 1.4개에 그친다. 보건부 예산이 줄어들면서 1인당 의료비도 덩달아 줄었고, 한편에서는 의료 기기 제조 부문도 위축되면서 코로나19용 마스크와 호흡기 대량 생산이 힘들어진 상태라고 엘피난시에로는 전했다.
6일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가 각 국 보건부 발표와 추가 소식을 종합한 것을 보면 멕시코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총 2439명이고, 사망자 수는 총 125명이다. 비교적 피해 규모가 덜한 것 같지만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진단할 키트가 부족하다.
"집에 머무릅시다" 는 내용의 문구를 내걸고 일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암로 대통령. [출처=트위터]
암로 대통령은 '와하카 데 무녜카'(멕시코 전통인형)이라는 별칭을 얻으면서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로선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는 모양새다. 멕시코 재무부는 올해 나라 경제가 3.9%역성장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 은행들은 이보다 더 비관적이어서 멕시코가 올해 -8%선의 더 가파른 역성장세를 보일 수 있다는 예상치를 내고 있다.
대통령은 멕시코 역사상 '89년만의 정권 교체'를 이루며 최고의 인기 속에 지난 2018년 12월 취임한 후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왔다. 서민 복지를 늘림과 동시에 긴축 재정을 단행하면서 공공 부문을 대폭 축소해왔다. '제 4의 변환'을 선언한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에너지 산업 육성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고 농업과 관광업을 지원해 청년 일자리를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너지 부문에서 멕시코 국영석유사 페멕스(Pemex)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가운데 코로나19가 멕시코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든다. 지난 3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국제 원유 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페멕스 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강등했다. BB+는 이미 '투자 부적격' 등급이다. 이런 가운데 6일 스탠더드앤푸어스는 멕시코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로 강등했다. BBB는 정크 바로 윗 단계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기대에 못 미치고 유가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멕시코에서 자금을 회수한 결과 올해 1분기(1~3월) 60억 달러(약 7조 3272억원)가 빠져나갔고 달러당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같은 기간 30%떨어졌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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