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37% 비싸도 산다…원유 레버리지ETN `묻지마 투자`
입력 2020-04-01 17:47  | 수정 2020-04-01 19:37
유가 연계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들이 최근 물량 부족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수십 % 괴리율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추가 상장을 하는 당일에도 고평가된 가격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괴리율을 잡기 위해 증권사가 추가 상장에 나서는 만큼 적어도 상장 당일에는 정상적인 가격 범위에서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가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증권사가 투자자가 몰린 틈을 타 높은 괴리율로 수익을 낸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각 증권사는 고평가된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품을 매수하려는 투자자가 몰리고 있어 물량을 투입해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괴리율이 높다는 것은 실시간 유가를 반영한 적정 가치보다 비싼 수준에서 ETN 시세가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이날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 2000만주를 상장했다. 지난달 24일 상장한 4000만주가 4거래일 만에 소진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27일 장중 소진된 삼성증권 LP 보유분이 이날 재충전되면서 LP 공백 기간 40% 이상까지 치솟았던 괴리율이 잡히나 싶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신규 상장 물량마저도 개장 1시간이 못 돼 전부 동나면서 괴리율은 다시 24% 이상 치솟은 채 장을 마감했다.

신규 공급 물량을 받아낸 것은 대부분이 개인투자자다. 배럴당 20달러 초반에서 횡보하는 국제 유가가 곧 반등할 것으로 바라본 개미들이 물량이 풀리는 대로 매집했다. 개인투자자는 이날 하루에만 이 상품을 2132억원어치 사들였다. 상장 이래 최대 규모 매수세다. ETN을 운용하는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개인투자자 매수세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강해 업계에서도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ETN과 상장지수펀드처럼 지수를 주종하는 상장지수 상품은 일반 주식과 달리 유동성공급자(LP)가 개입한다. 상품 가격이 지수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시장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는 게 LP다. 상품 매수 수요가 있으면 반대편에서 물량을 공급하고, 매도 수요가 있을 때는 상품을 사들이는 식으로 개입해 가격이 지수와 동떨어져 움직이지 않게 관리하는 게 LP 임무다.
문제는 지난달 초부터 개인투자자들이 원유 레버리지 ETN을 싹쓸이하면서 발생했다. 유가가 연초 대비 반 토막 나자 반등을 노린 매수세가 몰렸고, 증권사가 보유한 물량이 단기간에 동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각 증권사는 신규 상장을 통해 괴리율을 낮추겠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물량 공급이 이뤄지는 상장 당일에도 일평균 괴리율이 적게는 5%에서 크게는 19%까지 올라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2000만주를 추가 상장한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은 개장 후 1시간까지는 LP 물량 공급에 따라 괴리율이 15% 수준으로 조정되기는 했지만 물량이 동나자마자 괴리율은 빠르게 치고 올라 24%에서 장을 마감했다.
아울러 장 초반 괴리율이 15~20% 수준인 상황에서 LP가 공급한 물량이 모두 팔림에 따라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비싸게 물량을 공급해 괴리율만큼 수익을 내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 항의도 커지고 있다.
비슷한 문제는 최근 신한금융투자의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에서도 나타났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달 27일 이 상품 1300만주를 추가 상장했는데, 이날 하루 괴리율은 하루 종일 5%에서 6%로 유지됐다. 장중 종일 5만주씩을 실제 가격보다 5~6%고평가된 가격에 공급했다. 한편 1일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은 LP 보유 물량이 다 떨어져 괴리율이 37%까지 치솟았지만 여전히 개인 매수세가 쏠리는 상황이다.
한 투자자는 "그간 LP 보유 물량이 동나 괴리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며 상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를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했는데, LP가 보유 물량이 충분함에도 시장가와 이론가 괴리를 조정하기보다 개인의 고평가 매수를 이용해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증권사는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매수세가 전례 없이 강해 적정가에 물량을 공급해도 그 물량이 곧바로 소진돼 호가가 위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가격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ETN은 물량이 한정돼 있어 신규 상장할 때 장 초반에 물량을 한번에 다 던지지 않고 쪼개 푸는 방식으로 공급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정가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서 호가를 내기도 하지만 이 또한 괴리율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지 고평가 상태를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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