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고개 숙인 구리 박사`…코로나 쇼크에 구리값 30년만에 최저 추락
입력 2020-04-01 15:27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물 구리 선물은 1파운드 당 2.24달러로 떨어져 1분기 기준 198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오른쪽). 글로벌 구리 광산회사 주가도 줄줄이 떨어지는 추세다. [사진 출처 = FactSet·월스트리트저널(WSJ)]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 대유행)으로 원유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대표 원자재 '구리' 가격도 추락하고 있다. 구리 시장이 최근 30여년 새 최악의 한 달을 맞았는데, 이 정도는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 등 주요 투자은행이 줄줄이 구리 예상가격을 낮추는 한편에서 '전세계 최대 구리 생산지'인 남미 칠레는 지난해 말 냄비시위와 올해 초 코로나19에 더해 구리값 폭락까지 겹치는 바람에 불행의 한 가운데 섰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물 구리 선물은 1파운드 당 2.24달러로 떨어져 거래를 마쳤다. 올해 1분기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구리 선물 시세는 1분기 동안 20%폭락한 셈이고, 매년 1분기 별로 비교하면 198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선물이란 앞으로 돌아올 특정한 날짜를 정해두고 미리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시점에서 거래되는 현물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30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현물은 1톤(t) 당 4763달러로 마감해 지난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팔렸다. 올해를 기준으로하면 이날까지 21%가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구리 가격이 앞으로 3개월 동안 1t당 4900달러에 그칠 것이라면서 기존 목표가격(5900달러)에서 17%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씨티 그룹은 구리값이 1t당 4300달러, TD증권은 4200달러로 떨어질 것이라면서 골드만 삭스보다 낮게 잡았다. 금융분석업체 인터내셔널FC스톤(INTL FCStone)의 나탈리 스콧-그레이 금속 담당 선임 연구원은 WSJ인터뷰에서 "이런 고통은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구리 값이 1t당 4000달러로 하락할 수도 있다"고 더 비관적인 전망을 냈다.
지난 달 23일(현지시간) `전세계 구리 최다 생산지` 칠레에서 국영광산회사 콜데코 소속 직원이 채굴 등 관련 장비 앞을 지나다니며 코로나19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이후 25일부로 콜데코는 일부 작업장 운영을 15일간 중단했다. [사진 출처 = 트위터]
구리는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 박사'(Dr.Copper)로 불린다. 거의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원자재로 쓰는 금속이기 때문에 원유 다음으로 글로벌 경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구리 값 하락은 글로벌 구리 소비의 7%정도를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이 코로나19 여파로 생산을 일시 중단한 공급측 요인이 우선이다. 제네럴모터스(GM)와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같은 유명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중국에 이어 최근에는 미국, 인도, 멕시코, 브라질 등에서 정부 지참과 회사 사정에 따라 제조 공장을 일시 가동 중단했거나 상황에 따라 중단 기한을 연장할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 소재 제너럴모터스(GM) 조립 공장 풍경. [사진 출처 = GM]
특히 구리 절반을 사들이는 '세계의 공장' 중국 생산활동이 쪼그라든다는 점, 부차적으로 가장 큰 '소비재 시장'인 중국 경제 성장률이 반토막 날 것이라는 점도 부정적인 변수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대형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3월 제조업 PMI(구매관리자 지수·52.0)와 중국 금융정보업체 차이신이 중국 수출 업체들과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3월 제조업 PMI(50.1)이 전부 기준치인 50을 넘어 '낙관적'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중국 통계와 달리 현실적으로 중국과 거래하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 탓에 사실상 '봉쇄'됐다는 점에서 실제 전망은 밝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달 30일 세계은행(WB)은 중국에 대한 올해 성장 전망치를 기존 5.8%에서 2.3%로 대폭 깎았고, 최악의 경우 0.1%로 제자리 걸음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중이다.
당장은 공급 측면 탓이지만 추가 리스크도 있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사람들의 소비가 줄어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코로나19판데믹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전례없는 판매 절벽 상황을 맞은 탓에 올해 전세계 자동차 판매는 작년보다 12%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8%)보다 더 감소세가 크다. 특히 미국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보다 올해 15.3% , 유럽은 14%, 중국은 1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리 값이 나날이 떨어지면서 당장은 채굴업체 등 관련 업계 주식이 덩달아 급락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구리 채굴업체 프리포트-맥모런은 올해 1분기 동안 회사 주식이 49%하락했다. 전세계 구리 생산지 2위인 페루에서 정부가 코로나19 탓에 '국가 긴급 사태'를 선언하면서 생산활동이 중단되다시피한 여파다. 같은 기간 호주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광산업체 BHP그룹 주가는 26%, 영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광산업체 리오 틴토도 주가가 17% 급락했다.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칠레에서 청년들이 마스크를 쓰고 불평등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해 말 교통요금 인상 문제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칠레는 올해 코로나19가 덮치면서 핵심 산업인 구리 채굴업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탓에 일자리 문제와 열악한 공공의료 시스템 문제가 부각돼면서 양극화가 ...
결과적으로 후폭풍을 받는 것은 생산지다. 전세계 구리 생산지 2위인 칠레는 지난 달 31일 달러당 페소화 환율이 856.7페소로 사상 최고에 달했다. 그만큼 페소화 가치가 낮다는 의미다. 이날 기준 올들어 페소화 가치는 14.26%추락했다. 칠레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내려 1%로 정하고, 5억 달러어치 자금을 풀어 금융시장 지원에 나섰지만 나라를 떠받치는 주요 산업인 광업, 특히 구리가 고전하면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당장 국영 광산회사 콜데코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지난 25일 부로 추키카마타·라호 잉카·트라스파소 안디나 등 주요 작업장 운영을 15일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1일 기준 칠레는 코로나19 피해(확진자 총 2738명, 사망자 총 12명)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중 브라질(확진자 총 5812명, 사망자 총 202명)다음으로 가장 크다.
구리 값에 대한 긍정론도 나오지만 일단은 나중 얘기다. 골드만 삭스는 "글로벌 경제가 회복 낌새를 보이면, 원자재인 구리 가격이 먼저 오를 것"이라면서 "올해 하반기에 구리 값 반등이 시작되면 내년 들어서는 1t당 6000달러 선이 될 수도 있닥"고 내다봤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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