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n번방 관전자' 처벌하기엔…현행법 '사각지대' 곳곳에
입력 2020-03-27 08:14  | 수정 2020-04-03 09:05

불법 성착취 영상물 공유 사건인 'n번방' 사건을 두고 24살 조주빈 등 주동자뿐만 아니라 영상을 시청한 '관전자' 모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텔레그램에서 영상을 시청하기만 한 것으로는 죄를 묻기 어려워 관전자들에 대한 실질적 처벌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어제(26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1조는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판매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또 아동·청소년 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 또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다만, 영상물을 다운로드받아 휴대전화 등에 저장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재생만 한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메신저를 통해 공유된 영상을 보거나 링크를 타고 특정 사이트에 접속해 영상을 스트리밍하더라도 죄를 묻기 어렵습니다.


앞서 법무부는 변화된 인터넷 환경 등을 고려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한 경우뿐만 아니라 단순히 시청만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입법에 필요한 절차 등을 고려할 때 당장 n번방과 같은 성 착취물 유통 경로로 영상을 시청한 이들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시청 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검토하는 것은 영상물이 성 착취 등 죄질이 나쁜 범죄를 통해 제작됐을 뿐 아니라 시청한 사람들이 우연히 영상물을 접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보는 영상을 우연히 같이 보게 되는 것과 달리 특정 영상물에 접근할 수 있는 차등적인 권리가 있었다면 사실상의 '소지'로 봐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며 "이 논리에 따르면 입장료를 받아 차등적 접근 권한을 부여한 n번방 사건의 경우에도 영상을 소지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한 채 영상을 시청한 경우와 달리 후원금을 내고 회원이 된 경우는 영상을 시청만 했더라도 단순 시청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런 행위를 처벌할 법률적 근거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으로 해석됩니다.

n번방 회원 자격을 유지할 경우, 영상물에 접근할 권한을 획득하는 셈이므로 영상을 상습적으로 시청했다면 '소지' 행위로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풀이됩니다.

성 착취 영상물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이 아닌 성인인 경우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더욱 어려워지는 만큼 별도의 입법을 통해 처벌 공백을 신속하게 메워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된 영상물이라 하더라도 이를 반포·전시하지 않고 소지만 하는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범죄 행위로 만들어진 영상물이어도 피해자가 성인이라면 단순 소지로는 법적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피해자가 본인을 스스로 촬영한 것일 경우에는 이를 타인이 퍼뜨리더라도 처벌이 힘듭니다. n번방 사건과 같이 협박과 강요에 의한 촬영이더라도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찍은 경우는 협박죄 등으로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성폭력 범죄로서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n번방 사건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국회는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개정 성폭력처벌법)을 발의하고 20대 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며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역시 기존 법률을 부분적으로 고치는 것에 그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기존 성폭력 관련 법률을 보완하는 것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온라인 성범죄에 대처할 수 없다"며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별도의 독자 법률을 만들고 새로운 범죄 유형에 맞는 종합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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