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물방울' 대신 '쇠(鐵)방울' 내리는 외계행성 관측
입력 2020-03-12 08:17  | 수정 2020-03-19 09:05

지구에서 약 640광년 떨어진 물고기자리에서 물방울이 아닌 쇠로 된 비가 내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외계행성이 관측됐습니다.

유럽남방천문대(ESO)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다비드 에렌라이히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WASP-76b'로 알려진 초고온의 대형 가스 행성을 관측한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WASP-76b는 별(항성)에 바싹 붙어 1.8일 주기로 공전하는 이른바 '뜨거운 목성'으로 지난 2016년에 처음 관측됐다. 질량은 목성의 0.92배이지만 반경은 1.83배에 달합니다.

연구팀은 ESO 초거대망원경(VLT) 관측을 통해 WASP-76b의 공전과 자전 주기가 같아 '낮 면'(dayside)이라고 할 수 있는 한쪽 면만 별을 향하고 있는 것이 '쇠비'(iron rain)가 내리는 기이한 현상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는 달이 지구에서 봤을 때 뒷면은 보이지 않고 항상 앞면만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늘 항성의 햇빛을 받는 WASP-76b의 낮 면은 지구가 태양에서 받는 것의 수천 배에 달하는 복사에 노출돼 온도가 섭씨 2천400도 이상이며, 분자가 원자로 분해될 정도로 뜨거워 철과 같은 금속마저도 증기로 변해 대기로 올라갑니다.

행성의 낮 면과 달리 늘 빛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 있는 '밤 면'(nightside)은 기온이 1천500도 정도입니다. 낮 면과는 900도에 달하는 상당한 온도 차이를 보여 강한 바람이 만들어지고 낮 면에서 대기로 올라간 철 증기는 이 바람을 타고 밤 면으로 갑니다.

WASP-76b의 낮 면과 밤 면은 온도뿐만 아니라 화학성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이는 VLT에 장착된 특수 분광 장치인 '에스프레소'(ESPRESSO)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암석형 외계행성 및 안정적 분광 관측용 에셸 분광기'(Echelle SPectrograph for Rocky Exoplanet and Stable Spectroscopic Observation)의 약자로 원래는 태양과 비슷한 별을 도는 지구 닮은 행성을 찾기 위해 고안됐으나 안정성이 높아 외계행성 대기를 연구하는 주요 장치로 진화했습니다.

에스프레소를 통해 낮 면에서 밤 면으로 넘어가는 이른바 '저녁' 경계지역에서는 철로 된 증기 신호가 강하게 포착됐지만, 밤 면에서 낮 면으로 바뀌는 '아침' 경계지역에서는 이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이를 WASP-76b의 밤 면에서 쇠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논문 공동저자인 스페인 우주생물학센터의 에스프레소 과학팀장 마리아 로사 사파테로 오소리오 박사는 "관측 결과 WASP-76b 행성의 뜨거운 낮 면 대기에는 철로 된 증기가 가득했으며, 이 중 일부가 행성의 자전과 바람의 영향으로 밤 면으로 유입된다"면서 "철로 된 증기는 이곳에서 훨씬 더 온도가 낮은 환경을 만나 응축되고 비로 내리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에렌라이히 교수는 쇠비의 존재를 밝혀낸 에스프레소와 관련,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은 가장 극단적인 외계행성의 기후를 추적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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