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성 축소 의혹` 월성 1호기 감사결과 발표 연기는 명백한 불법" 학계 반발
입력 2020-02-25 17:24  | 수정 2020-02-25 17:35

월성 원전 1호기를 운영하는 경북 경주 월성 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사진 = 연합뉴스]
최근 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한 가운데, 학계 전문가들이 이는 불법적인 정치 행위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해 1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월성 1호기의 영구 정지를 승인한 데다 한수원이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임의로 축소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61개 대학 225명의 교수들로 구성된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25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에 대한 감사 결과를 국회법이 정한 시한인 이달 말까지 발표하라"며 "국민을 기만하고 국가 기간산업을 위태롭게 만든 산업부와 한수원의 관련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법 127조의2에 따르면 감사 보고서 제출 기한은 감사 요구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로, 당초 월성 1호기 관련 감사 보고서의 제출 시한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국회법에 따라 감사원은 특별한 사유로 기간 내 감사를 마치지 못했을 때 중간보고를 하고 2개월의 범위에서 감사기간 연장을 요청할 수 있지만, 감사원은 이미 2월 말로 제출 시한을 최대한 연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19일 최재형 감사원장은 "현실적으로 2월 말이라는 시한 내에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에교협은 "국회의 합법적인 감사 요구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를 '사안이 복잡하다'는 황당한 사유로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감사원장의 결정은 법치 국가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배임적 정치행위이자 국민 기만"이라며 "준사법기관인 감사원이 대놓고 국회법을 무시하는 일은 감사원장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심각한 국정농단"이라고 비판했다.

월성 1호기는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이 7000억원을 들여 노후 설비 교체 등 안전성을 강화한 끝에 원안위로부터 10년 연장 운영 허가를 받아 2022년 11월까지 가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정부 들어 한수원이 돌연 원전의 낮은 경제성을 내세워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리면서 청와대가 한수원 측에 조기 폐쇄 결정을 종용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한수원은 향후 월성 1호기의 평균 가동률을 54.4% 이하로 보고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실제 월성 1호기의 지난 35년 평균 가동률은 78.3%였다.
에교협은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의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삼덕회계법인의 축소·왜곡된 경제성 평가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의 적극적인 설득의 결과였다"며 "이는 정 사장 본인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스스로 밝힌 명백한 진실이며 감사원은 이를 절대 외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14일 정 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월성 1호기의 원전 가동률이 당초 회계법인이 산정한 70%에서 60%로 떨어진 이유에 대해 "회계법인은 자신들이 세운 기준에 대해 의견을 구했고 저희가 설명을 해줘서 받아들인 게 전부"라며 "회계법인은 2001~2017년 평균치를 활용해 월성 1호기의 가동률을 70%로 썼는데 우리 실무자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강화된 규제환경을 고려해 3년 평균, 5년 평균, 10년 평균이 모두 60%에 근접한다고 설명하자 60%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바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교협은 최근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지난 12일 월성 원전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예상 포화 시점을 2021년 11월에서 2022년 3월로 4개월을 임의 연장한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월성 원전의 운영 주체인 한수원과 어떠한 협의도 없이 자체 추정을 근거로 사용 후 핵연료 시설의 포화 전망 시점을 연장한 것은 국민 안전과 전력 수급 체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재검토위의 명백한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원자로에서 꺼낸 섭씨 300도의 뜨거운 사용 후 핵연료는 원전 내 습식저장시설(임시저장 수조)에 5~6년간 보관해 냉각 과정을 거친다. 이후 사용 후 핵연료는 건식저장시설로 옮겨져 열과 방사능이 어느 정도 자연적으로 떨어질 때까지 40~60년간 보관한 뒤 처분된다. 현재까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약 1만6000t의 사용 후 핵연료는 모두 원전 내 습식·건식저장시설에 임시 보관 중이다. 사용 후 핵연료를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으면 원전을 가동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충분한 저장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에교협은 "재검토위는 사용 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맥스터)의 월권적 포화 시점 연장을 취소하고, 한수원은 원안위가 승인한 맥스터 증설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달 10일 원안위는 내년 11월 포화 상태에 달하는 월성 원전의 맥스터 7기를 추가 건설하는 내용의 '월성 1~4호기 운영변경허가안'을 승인한 바 있다. 이는 2016년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안위에 추가 건설을 신청한 지 3년 9개월 만으로, 그동안 탈원전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은 맥스터가 원전 가동을 전제로 한다며 반발해왔다.
전문가들은 맥스터의 건설 기간(1년 7개월)을 고려하면 하루 빨리 건설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덕환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탈원전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맥스터 추가 건설 지연을 탈원전의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제라도 맥스터 증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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