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신탁상품` 못키운 한국…노인들 `DLF`로 몰았다
입력 2020-02-18 17:51  | 수정 2020-02-18 19:44
◆ 한국은 '신탁' 후진국 (上) ◆
서울 역삼동 소재 한 은행에서 최근 김 모씨(82) 유족들이 서로 김씨 돈을 찾겠다고 싸우는 소동이 벌어졌다. 김씨를 돌보던 그의 딸이 김씨 예금에서 돈을 찾아 장례를 치르려 했으나 다른 형제들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에선 유언장에 따른 상속 완료 후 예금 지급이 가능하다고 중재했지만 유족 간 싸움은 계속됐다.
일본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신탁상품에 가입하고 있어 이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신탁의 한 종류인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정해 재산을 관리하고, 사망 후에는 자신이 정한 사람에게 원하는 방법으로 상속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고령자들이 신탁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가입 절차가 번거롭고 다른 상품에 비해 혜택이 없는 데다 신탁상품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신탁이 활성화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신탁업법이 2009년 자본시장법에 통합된 이후 유명무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세제 혜택이 부여되지 않고, 상품 이용을 불편하게 하는 각종 규제 탓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신탁상품은 광고·홍보도 안 되고, 상품 가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금융사에 직접 찾아가야 한다. 다른 상품과 합쳐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합동운용'도 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또 신탁업자를 은행·증권·보험·부동산신탁사로 제한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로펌 등 다양한 기관에서 신탁 출시가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국내 신탁제도의 모태가 된 일본 신탁시장과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일본신탁협회·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일본 신탁 규모는 1224조1000억엔(약 1경3308조원)으로 우리나라 신탁(905조원)의 14.7배에 달한다. 신탁상품 부재는 국내 고령자들이 고위험 상품에 몰리는 요인도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문제가 된 파생결합펀드(DLF) 개인투자자 중 60대 이상이 48.4%를 차지했다.
금융당국은 2017년 신탁업법 분리를 추진했지만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무산됐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고령자들이 자산 증식과 사후 대비가 가능하도록 국내 신탁시장이 하루속히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신탁 : 주식이나 예금 등 보유 자산을 은행 등 금융사에 맡겨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문일호 기자 /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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