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韓신탁 `흑역사`…사기에 동원되고, 생색내기 상품만
입력 2020-02-18 17:43  | 수정 2020-02-18 19:42
◆ 한국은 '신탁' 후진국 (上) ◆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들의 신탁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사기성 금융 사고에 신탁이 활용된 전례가 적지 않고, 그나마 출시되고 있는 신탁 상품들도 생색내기에 그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신탁의 대표적인 흑역사로는 동양증권 기업어음(CP) 사건과 KT ENS 대출 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3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동양사태'는 특정금전신탁에서 시작됐다. 동양사태는 당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실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해 투자자들에게 1조원 넘는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당시 동양증권은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CP를 특정금전신탁으로 포장해 대량으로 판매했다. 특정금전신탁을 이용해 증권사가 CP를 쪼개서 사고파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KT ENS는 2014년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참여하면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했다. 이 기업어음을 넣은 특정금전신탁을 은행들이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이후 KT ENS가 1조8000억원 규모 사기 대출에 연루되면서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사들이 주력 신탁인 주가연계신탁(ELT) 이외에 다른 신탁 상품도 선보이고는 있으나 상당수가 '형식 갖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신한은행은 '신한 미래설계 내리사랑 신탁'이라는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출시했다. 일본의 신탁 상품을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최소 가입 금액이 10억원 이상이라 진입 문턱이 높아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다. KB국민은행은 반려동물 주인이 은행에 미리 반려동물을 위한 돈을 맡기는 '펫신탁'을 내놨으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메디케어 출금신탁'과 하나은행의 '케어신탁'은 치매나 질병 등으로 가입자가 직접 병원비를 인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 신탁 상품이다.
일본에서는 활성화된 치매신탁과 같은 상품이 지난해 말에야 처음 나온 것이다. 시중은행에서 신탁 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유언대용신탁과 치매신탁 등 우리나라도 다양한 종류의 신탁이 시도되지만 제도적 문제와 사회적 분위기로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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