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0(제로) 미스터리'
중국 우한발 코로나19가 동남아 국가 전역에 확산하는 가운데 인도네시아만 유독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검역 신뢰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세계 4위 인구대국(약 2억7000만명)인데다 중국 화교 경제의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아직까지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자 "정부가 의도적으로 확진자 통계를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고온다습의 열대우림지라는 환경적 특성과 중국 본토와 먼 다도해 국가라는 지리적 특성이 맞물려 전염병 확산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덜 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이날까지 자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접경국인 싱가포르가 이날 정오 현재 77명의 확진자를 양산한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심지어 또 다른 접경국인 말레이시아(22명)도 두 자릿수 확진자를 관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최근 하버드대 T.H.Chan 공중보건대학 측은 자체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최소 1명에서 최대 10명의 확진자가 인도네시아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호주 매체인 시드니 모닝 헤럴드도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허술한 코로나19 진단 시스템을 목격한 자국 시민의 제보 내용을 최근 보도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제보자인 매튜 헤일 씨는 발리섬에서 고열 증세를 느껴 지난달 26일 현지 병원을 찾았지만 3곳의 병원 중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진단 키트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외부의 이 같은 통계 신뢰도 문제에 대해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시종일관 "우리는 완벽한 검역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역으로 인도네시아 측은 지난 2003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 등 과거 글로벌 감염 사례에서도 동남아 국가 중 인도네시아 확진자가 거의 드물었다는 점을 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진자가 0(제로)인 게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실제 국제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창궐한 사스 사태에서 최인접국인 싱가포르가 73명의 확진자를 냈지만 인도네시아 내 확진자는 전무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온다습한 인도네시아의 기후 특성이 바이러스 확산 억지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은 사스 바이러스가 섭씨 4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최장 28일간 생존한 반면, 기온이 20도, 40도로 점차 올라가자 빠르게 불활성화하는 특징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홍콩대 연구팀도 '바이러스학 발달'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스 바이러스가 22∼25도의 온도와 40∼50%의 습도에서 숙주 없이도 5일 이상 생존한 반면, 온도를 38도로 높이고 상대 습도를 95% 수준으로 올리자 생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인도네시아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수도 자카르타를 기준으로 현지 1~2월 평균 기온과 습도는 각각 25~30도, 85% 수준이어서 이 같은 연구결과에 적용할 때 바이러스 생존력을 약화시키는 환경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과거 연구들이 사스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코로나19는 기존에 없었던 신종 바이러스"라며 "과거 연구 결과를 코로나19에 적용해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가 1만7000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 다도해 국가이자 중국 본토와 가장 먼 동남아 국가라는 점도 코로나19 확산 위협을 줄이는 지리적 요인으로 거론된다. 2억7000만명 인구의 57%가 자바섬(수도 자카르타 소재)에 밀집된데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 섬이 낙후된 미개발 열대우림지에 속한다.
반면 이웃국가인 싱가포르의 경우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기후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구·경제구조에서 중국 본토와 밀착돼 있어 유독 많은 확진자가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의 80%가 중국계로 중국 본토와 인적·물적교류 수준이 인도네시아보다 현저히 높은 중화권 국가다. 2003년 중국 광둥성에서 발원한 사스 사태 때 싱가포르 내 확진자는 238명으로 중국(5327명), 홍콩(1755명), 대만(346명)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초 발원지가 중국 본토가 아닌 중동지역이었던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청정지역으로 분류됐다.
[표] 과거 전염병 사태 시 인도네시아·접경국 확진자 흐름
■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인도네시아 2명
-싱가포르 238명
-말레이시아 5명
-필리핀 14명
■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인도네시아 0명
-싱가포르 0명
-말레이시아 2명
-필리핀 2명
■ 2020년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인도네시아 0명
-싱가포르 77명
-말레이시아 22명
-필리핀 3명
※ 코로나19는 18일 정오 기준, 자료 = 국제보건기구(WHO)·미국 존스홉킨스대
[이재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