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스카 각본상 받은 봉준호는? `영화 외길로 승부한 씨네키즈`
입력 2020-02-10 11:17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하루 앞서 미국 서부 샌타모니카에서 개최된 제35회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FISA)에서 한국 영화계 최초로 트로피를 차지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본업인 창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 각본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51)은 '영화 제작'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수 달 전부터 해왔다. 10일(현지시간) 오전 LA 돌비극장에서 받은 각본상까지 '기생충'으로만 총 178개 국제영화상을 받으면서 수상에 도취될 만도 하지만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건 언제나 다음 작품이다. 그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전 세계 영화 시상식을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한 손으로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틈틈이 적는다. 아울러 자신과 창작을 함께하는 이들의 작업 상황을 전 세계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강박'에 가깝다. 그는 "신경정신과에서 나를 상담하던 의사가 '불안해하고 강박 증세가 강한데 어떻게 해소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며 "내 대답은 '영화 작업'이다"고 밝힌 바 있다. 티켓파워를 지닌 영화감독들이 '제작사'를 병행해서 수익을 극대화함과 달리 그는 별도 사업을 펼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애정 있는 몇몇 영화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릴 뿐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의 외손자인 그는 어릴 때부터 스토리텔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AFKN 영화를 보면서 존 카펜터, 브라이언 드 팔마, 샘 퍼킨파 감독의 작품을 섭렵했다. 자막 없는 영어 대사의 의미를 대충 추측하면서 들었던 게 상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한 그는 영화동아리 '노란 문'을 만들어 습작을 시작했다. 아울러 대학신문 '연세춘추'에는 만평을 게재하며 날카로운 사회감각을 길렀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일컬어지는 봉준호 작품세계는 '소설가의 외손자'이자 '좌절한 만화가', 그리고 '씨네키즈'였던 그의 정체성이 혼합된 결과물인 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사회 병폐를 유머러스하게 꼬집는 블랙코미디로 주목 받았다. 상업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로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거물 제작자 차승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평단과 관객에게 봉준호란 이름을 각인시킨 '살인의 추억'(2003)은 차승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탄생한 것이다.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최신호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스케치를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사진 제공 = 봉준호 감독]
단 하나도 '망작'이 없다는 봉준호 필모그래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와 협업했던 영화인들은 사소한 것까지 전부 설계해두는 치밀함에 혀를 내두른다. 최근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 리포터가 공개한 '기생충' 밑그림에는 그가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 영화 속에서 기택(송강호)네 가족에게 가정부 일자리를 빼앗긴 문광(이정은)이 지하실 문을 여는 그림이 대표적이다. 온몸으로 문을 여는 문광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위로 적힌 빽빽한 글씨로 배우들의 동선을 표시해뒀다.
이날 각본상 수상 후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라고 말문을 뗐다. 그는 "국가를 대표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니지만 이건 한국에 가장 첫 오스카상"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제 아내에게도 감사하고, 제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준 배우들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했다.
'기생충'은 각본상 외에도 오스카 5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며 현재(한국시간 오전 11시) 시상식이 진행 중이다.
[LA =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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