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뮤지컬 많이 보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저야 여러 작품을 다양하게 봤을 뿐이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인터파트 티켓을 통해 잡히지 않는 소극장 뮤지컬들도 많고요. 저도 그것까지 합치면 자체 결산으로는 82편 162회 관람했지만요, 하하."
지난 31일 만난 한국뮤지컬어워즈 '올해의 관객상' 수상자 한명인 씨(39·사진)는 기자가 축하를 건네자 손사래부터 쳤다. 뮤지컬 보는 게 너무 좋아서 주말마다 서울을 오갔을 뿐인데 상까지 받으니 너무 감사하단다. 한 씨는 지난 20일 열린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가장 많은 작품을 관람한 관객에 수여되는 '올해의 관객상'을 받았다. 인터파크 티켓에 따르면 그는 2018년 12월 1일부터 2019년 11월 30일까지 81편의 뮤지컬을 봤다.
조금이라도 좋은 좌석은 푯값이 10만원을 훌쩍 넘는 뮤지컬은 평범한 회사원인 한 씨에게 결코 만만한 취미는 아니었다. 연말정산에 잡힌 것들만 대강 추려 봐도 지난해 티켓 예매에 쓴 돈만 2000만~3000만원 가까이 나왔다. 여기에 대구와 서울을 버스로 오갈 때 드는 교통비, 주말동안 서울에서 지내는 숙박비 등을 더하면 한 달에 300만원은 족히 드는 셈이다. 한 씨는 "부담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알뜰살뜰 모아왔던 것들이 있다"며 "한국 뮤지컬과 함께 울고 웃는 행복한 시간들이 너무 좋아 기꺼이 쓰고 싶다"고 했다. 이어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상경길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피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뮤지컬이 좋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에 입문하게 된 건 2013년 '사운드 오브 뮤직'과 '맘마미아'를 살고 있는 대구에서 보면서였다. 처음엔 한 씨도 이렇게 뮤지컬을 좋아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건 '레베카'를 관람한 2016년. 서울에서 공연하는 여러 작품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이때는 1년에 몇 편 못 봤다고 한다. 2018년 하반기 건강이 회복되며 그의 뮤지컬 관람에 발동이 걸렸다. 한 달에 한 편씩 봐서는 보고 싶은 걸 다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일정이 없으면 매주 서울에 올라와 작품을 봤다.
한 씨가 꼽는 뮤지컬의 매력은 '넘버'(노래하는 부분)다. 유튜브에서 올라온 짧은 영상들을 보고 '벤허' '시라노' '킹아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넘버가 마음에 드는 작품마다 족족 예매해왔다. 가장 좋아하는 건 벤허와 시라노로 각각 11번, 8번 봤다. 즐겨 보는 배우로는 홍광호·카이·조형균·신영숙·옥주현 등을 꼽았다. 배우마다 다른 매력이 있어 여유가 있다면 주요 배역 별로 두루 관람한다고 한다.
서사 측면에선 공감이 잘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 씨는 "부족한 스토리를 배우들이 연기와 노래로 채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이런 부분만 더 다듬는다면 더 좋은 뮤지컬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과 지방 간 인프라 격차가 큰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그는 "지방에서는 오케스트라 라이브가 아니라 녹음한 음악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공연장 자체도 좋지 않다"며 "공연 보는 비율로 따지면 서울이 95%, 대구가 5%"라고 했다.
대극장 뮤지컬과 소극장 뮤지컬의 비중은 55대 45 정도로 골고루 본다고 했다. 대극장 뮤지컬은 웅장한 무대와 유명한 배우 그리고 검증된 작품성을, 소극장 뮤지컬의 경우는 무대와 객석 사이 거리가 가까워 배우의 연기를 더 잘 보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설명했다. 좌석은 주로 무대 중간 정도에 위치한 VIP석 혹은 R석을 상석으로 꼽았다.
요즘 공연장 관객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서도 물었다. 한 씨는 관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죠, 불안합니다. 그래도 뮤지컬을 안 볼 수는 없고요. 답답해도 마스크를 쓰면서 보고 있지만 저 혼자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를 위해 다들 마스크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빠르게 마치고 한 씨는 시작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서둘러 공연장으로 갔다. 이날 그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웃는 남자' 등 하루에 두 탕을 뛰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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