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월의 6.25전쟁영웅`에 강원도 734고지와 목숨 바꾼 김영국 대위
입력 2020-01-31 14:56 
조지 새넌 맥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총공세로부터 강원도 감화지구 734고지를 사수하며 목숨을 잃은 고(故) 김영국 육군 대위가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31일 밝혔다.
1928년 충북 진천군에서 태어난 김 대위는 6·25전쟁 발발 후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해 1050년 12월 제2사단 32연대에 소대장으로 배속됐다.
1951년 9월 1일 중공군 제80사단 239연대가 강원도 김화지구 734고지를 빼앗기 위해 총공격을 해오자, 당시 734고지 전진거점을 전담하던 7중대 중대장이었던 김 중위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기필코 734고지를 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7중대는 대대 규모의 적군에 대항해 결사 항전을 했으나,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못이겨 고지의 9부 능선까지 밀렸다. 이때 김 중위는 솔선수범해 직접 적진으로 뛰어 들어 6명의 적을 사살하고 기관총 1정을 탈취했으나 끝내 적의 흉탄에 전사했다.
김 중위가 이끄는 7중대의 분전으로 734고지를 결국 사수해냈고, 이 전공으로 김 중위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수여받았다. 정부는 김 대위의 공훈을 기려 1951년 을지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또 이날 보훈처는 일제시대 당시 '신사참배 거부 운동'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지 새넌 맥큔(한국명 윤산온)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73년 미국에서 태어난 맥큔 선생은 1905년 9월 평양선교지부 숭실학교 선생으로 부임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일제의 강경한 탄압 사실과 3·1 운동의 의미와 내용을 편지로 적어 검열을 피해 외국인을 통해 미국 시카고에 있던 '컨티넨트(The Continent)' 잡지사로 보내는 등 3.1운동을 지원했다. 숭실학교 교장이던 1930년부터 일제가 모든 학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계속 거부의사를 표명하며 일제의 탄압에 맞서기도 했다. 선생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재미 유학생 단체인 북미대한인학생회자문위원을 맡아 독립운동 지원을 이어나갔다. 1963년 정부는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바 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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