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새내기 맞는 대학가 `젊은 꼰대` 주의보
입력 2020-01-31 13:43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한 박 모씨(20)는 최근 신입생 후배들을 맞으면서 과거의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 떠올랐다. 1년 전 선배가 박씨에게 술을 억지로 권한데다 참여하기 싫은 단체 활동도 마지못해 해야 했다. 동기인줄 알았던 이가 사실은 선배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했다. 박씨는 "올해 신입생들은 내가 겪었던 악몽같은 경험을 겪지 않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마다 2020학번 신입생 맞이가 본격화되면서 선배들 사이에서는 '젊은 꼰대' 주의보가 내려졌다. 신입생들에게 부담이 될 만한 문화를 없애 '꼰대(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이를 칭하는 은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선배들의 자성 목소리가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다.
31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신입생 환영 문화 중 하나인 '엑스맨' 폐지 논의가 활발하다. 엑스맨은 선배들이 신입생 사이에 몰래 숨어 있다가 나중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문화다. 선후배 사이의 친목을 도모하고 대학 생활에 서투른 신입생들을 돕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엑스맨 선배가 신입생 단체 대화방 내용을 퍼 나르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대학가에서는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서강대에서는 학부 대표들이 최근 논의를 거쳐 전 학부에서 엑스맨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강대 경제학부의 새내기맞이사업단장을 맡은 정민재 씨(21)는 "신입생들이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엑스맨 문화를 올해 없애기로 했다"고 전했다.

엑스맨을 두기로 결정한 학과 대표자들도 논란을 인식하고 부작용 방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과대표를 맡고 있는 신 모씨(20)는 "인권침해 논란을 모르지 않지만 엑스맨을 두기로 했다"며 "대신 무분별하게 대화방 내용을 캡쳐하는 걸 절대 금지하고 과 임원들이 엑스맨을 제어할 수 있도록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운동권에서 유래한 '마임(몸짓) 문화'도 속속 사라지고 있다. 마임은 민중가요 등을 틀어놓고 참석자들이 간단한 율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 사범대학은 올해 새내기 환영 행사부터 그동안 지속돼 왔던 마임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15개 과반 대표가 참석해 그 중 10명이 폐지하자는 안에 동의 표를 던졌다. 마임 문화가 정치권에서 파생된데다 자칫 신입생들에게 춤을 강요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범대의 마임 문화 폐지 결정으로 서울대 내에선 인문대에만 마임 문화가 남게 됐다.
재학생들은 신입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하나 둘 사라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나타내지만 구태의연한 폐습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 재학 중인 정 모씨(24)는 "아직도 신입생 때 선배들에게 배운 노래와 율동이 기억에 남는다"면서도 "신입생들이 부담을 느낀다면 선배들도 자제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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