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1일.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괴질은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해 30개국에서 8096명의 괴질 확진자가 나왔고 이 가운데 774명(9.6%)이 사망했다.
바로 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SARS 코로나바이러스)다.
최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우한폐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면서 전세계를 공포로 몰고 있다.
이 중에서도 홍콩은 17년 전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며 중국발 신종 괴질이 자국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급기야 오는 30일 자정(현지시간)를 기해 중국 본토와 홍콩을 잇는 고속철도와 페리 운행을 전면 중단하고 본토로 가는 항공편도 절반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중국 본토인에 대한 개인 여행비자 발급도 중단한다. 이에 앞서 홍콩 정부는 지난 25일 우한폐렴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후베이성에서 오는 중국인들의 입경을 원천차단키로 했다.
다행히 29일 오전 현재 홍콩 보건당국에 따르면 홍콩 내 우한폐렴 확진자는 총 8명으로 최근 이틀 간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데다 사망자도 보고되지 않았다.
홍콩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초강력 대응으로 우한폐렴 확산 저지에 나선 데는 이른바 '아모이 가든의 악몽'이라는 아픔이 자리잡고 있다.
2003년 사스 사태로 발생한 전세계 774명 사망자 중 무려 42명(5.4%)이 홍콩 내 한 아파트에서 집단적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현대 글로벌 전염병 대응 체계에서 전례가 없는 최악의 사건이었다.
당시 홍콩 아모이 가든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스 확진자는 총 329명으로 홍콩 정부는 물론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서 '어떻게 특정 거주시설에서 이 같은 대규모 발병이 가능한가'라는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조사가 진행됐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를 설명할 명확한 과학적 답변은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홍콩 중문대학과 홍콩대학은 공동 연구를 통해 "공기를 통한 집단 전염 가능성이 높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공동 연구진은 아모이가든에 거주하던 사스 확진자(이른바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의 배설물에 섞여 있던 바이러스가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는 과정에서 물방울어 묻어 공기를 통해 확산됐다고 추정했다.
이 공기가 환기구를 통해 다른 거주민들에 전파되면서 현대 전염병사에 전무후무한 최악의 집단 발병과 대규모 사망 사례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해 홍콩 전체 사스 확진 사망자(299명) 기준으로도 아모이 가든 아파트 거주자들에서 쏟아져 나온 사망자는 14%에 이른다.
사스 사태가 진정된 후 홍콩 보건당국에서는 아모이 가든 집단발병 참사를 반성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CNN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21세기형 새로운 전염병을 마주하면서 19세기 같은 안일한 대응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우한폐렴에서 중국의 다른 인접국보다 가장 발빠르게 국경 간 이동 제한 조치를 취한 홍콩의 대응을 보면 17년 전의 뼈저린 아픔이 올해 제대로 '학습효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홍콩이 지난해 시위 사태로 해외자본 이탈 등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터라 이번 우한폐렴 사태까지 더해지면 치명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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