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묻지마 CB투자` 신용리스크 덮치나
입력 2020-01-27 17:33  | 수정 2020-01-28 14:42
◆ 사모펀드 또 환매중단 ◆
2018년 6월 25일 코스닥 벤처펀드 운용사 대표들은 협의를 갖고 '자정 결의'를 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코스닥 벤처펀드 흥행으로 전환사채(CB) 시장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운용사 대표들이 '묻지마 CB 투자'를 자제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당시 모임에 참여한 사모펀드 운용사는 라임자산운용 알펜루트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디에스자산운용 파인밸류자산운용 포커스자산운용 등 9곳이었다. 당시 CB 발행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기에 운용사들이 모여 자정 결의까지 했을까. 코스닥 상장사나 일부 우량 비상장사가 이자율이 0%인 CB를 발행해도 자금이 몰렸다. 2018년 5월 코스닥 상장서인 A사는 이자율 0%에 콜옵션율 70%가 붙은 CB 140억원어치를 발행했지만 시장에서 즉시 소진됐다. 시장 과잉 열기에 편승해 CB를 발행하기 어려운 한계기업들도 발행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라임자산운용은 "코스닥 벤처펀드 규모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커지면서 성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기업들까지 잇달아 유리한 조건에 CB를 발행하고 있다"며 "CB 등 메자닌(주가연계사채) 시장이 과열된 상태라고 판단해 당분간 신규 메자닌 펀드는 내놓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CB 발행 열기로 코스닥 기업이 발행한 CB 규모는 2017년 3조2796억원에서 2018년 5조2798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라임 사태 등의 영향으로 소폭 감소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4조원이 넘게 발행됐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코스닥 벤처펀드 등장 전까지만 해도 CB가 시장 원리에 따라 적정하게 발행되고 유통·관리됐는데 벤처펀드 등장 후 한계기업에 가까운 기업들까지도 CB를 발행하고 펀드들이 쓸어 담았다"며 "한계기업들이 제대로 파티를 즐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신용등급을 받은 뒤 공모발행한 메자닌 채권 비율은 2018년 2.9%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부분의 메자닌 채권이 신용등급도 거치지 않고 사모로 발행됐다는 얘기다. 라임자산운용과 알펜루트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는 만기 전에 투자자들이 개방형 펀드에서 돈을 빼 가려고 하면서 발생했다.
문제는 만기가 다가오는 코스닥 CB 규모가 올해(1조8978억원)보다 내년(4조164억원), 내년보다 2년 후(4조4392억원)에 더 크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상장사들은 CB를 발행할 당시에는 만기에 원금 상환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CB발 신용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