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와인 관세 때리자 프랑스 디지털세 1년 유예…트럼프 판정승
입력 2020-01-21 10:5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기자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IT(정보기술) 대기업을 상대로 디지털세를 부과하려던 프랑스 정부와 협상에서 사실상 판정승을 거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디지털세와 관련해 좋은 토론을 했다. 우리는 모든 관세 인상을 피한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뒤 이어 프랑스 정부는 양 정상이 디지털세 관련 협상을 올 연말까지 계속할 것임을 알리며 이 기간 동안 관세 인상을 유예한다고 공개했다. 올해 첫 부과가 예정된 디지털세를 1년 간 유예키로 한 것이다.
블룸버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양국이 합의한 관세인상 보류는 프랑스의 디지털세에 대한 미국의 보복관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의 재보복 관세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프랑스가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자국 IT 대기업을 타깃으로 세계 최초로 디지털세를 도입해 연간 수익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려 하자 24억 달러(약 2조8000억원) 상당의 프랑스산 와인, 치즈 등 63종에 최고 100%의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맞서 프랑스는 미국이 추가관세를 부과할 경우 EU가 보복에 나설 것이라며 강대강 대응 기조를 천명했다.
이후 최근까지 양국은 물밑협상을 벌인 뒤 지난 19일 정상 간 통화로 올해 연말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디지털세에 관한 국제조세 원칙과 세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주드 디어 백악관 대변인도 20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이 디지털세에 대해 성공적인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합의했음을 공식 확인했다.
양국 간 합의는 프랑스에 이어 올해 디지털세 시행에 들어간 이탈리아를 비롯해 연내 제도 도입을 진행 중인 영국 등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최초로 지난해 7월 디지털세를 발효한 프랑스가 OECD라는 다자적 틀에서 과세 설계를 다시 진행키로 한 만큼 이들 국가도 OECD 논의 상황을 봐가며 자국의 디지털세 설계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의 디지털세는 전세계 수익 7억5000만유로(약 9940억원) 이상이면서 프랑스 내에서 2500만유로(약 330억원) 이상 수익을 거둔 글로벌 IT기업들에 대해 연간 수익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이는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이 시장 경제에 최초로 적용된 사례여서 주요국 정부는 물론 글로벌 IT 기업들도 실제 과세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이에 대해 미 무역대표부(USTR)는 프랑스 정부가 '전세계 매출 9억 5000만유로·프랑스 매출 2500만유로'라는 자의적 설정으로 프랑스와 유럽 및 다른 아시아 IT 기업들은 쏙 빼놓고 미국 기업들만 과세 타깃으로 삼았다며 디지털세 설계에 심각한 차별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왔다.
USTR는 지난달 공개한 프랑스 디지털서비스 과세 관련 보고서에서 "프랑스 디지털세가 지금 기준으로 적용되면 과세 범위에 들어가는 27개 기업 중 17개 기업(63%)이 미국 기업"이라고 밝혔다.
USTR 자체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인 알파벳(구글·유튜브), 아마존·이베이(전자상거래), 페이스북·트위터(소셜미디어), 애플(애플뮤직), 에어비앤비(숙박)·익스피디아·부킹스닷컴(여행), 매치그룹(데이팅앱) 등 17개 미국 기업이 과세 기업으로 포획되는 반면, 프랑스 토종 기업은 크리테오(광고서비스) 단 한 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세액의 방대성도 미국의 분노를 자극시켰다.
통상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과세가 한 해에 벌어들인 이익(Income)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프랑스 정부는 과세 기준을 수익(Revenue)으로 잡아 과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인세의 경우 단순히 기업 수중에 들어온 전체 금액일 뿐인 수익이 아닌, 인건비·마케팅비 등 비용을 뺀 이익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아무리 매출이 크더라도 그 기업에 남는 게 없다면 세금을 감내할 여력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프랑스 디지털세 소급시점을 두고도 현저히 부당한 설계라고 반박해왔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7월 모든 입법 절차를 완료하고 디지털세 법안을 공식 발효했다. 그런데 과세가 되는 시점을 이보다 6개월 앞선 2019년 1월부터 발생한 수익으로 소급적용했다. 이를 두고 미국은 세수 확보에 목이 맨 프랑스 정부가 무리하게 새 법령을 발효하면서 얼토당토 않은 소급을 단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부는 민·형사법을 비롯해 통상 새 법령을 제정해 발효할 경우 국민과 기업,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해 소급시점을 발효 후 수 개월 혹은 수 년 뒤로 미뤄 적용한다. 그런데 프랑스는 이와 거꾸로 오히려 6개월 더 앞선 시점으로 과세 기준점을 소급해 악의적으로 세금을 뜯어내려 한다고 미국은 주장해왔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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