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금융사 기업대출 심사때 `ESG 기준` 뜬다
입력 2020-01-01 18:44  | 수정 2020-01-27 16:07
올해 금융권에는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가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사들이 기업 재무 상태뿐만 아니라 ESG를 기업 대출과 투자 때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무 정보에 기반한 기업 신용평가만으론 '혁신 금융'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할부·리스업체인 현대커머셜과 임팩트 투자사인 크레비스는 이달부터 ESG를 기업 대출 심사와 투자 때 반영하기로 했다.
이들 회사는 핀테크 업체인 지속가능발전소가 만든 '비재무·인공지능(AI) 기반 중소기업 지속가능신용정보 서비스(SCB)'를 이용한다는 방침이다. SCB는 기업 지배구조와 사회공헌활동, 사내 조직문화, 친환경 정책 등을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는 서비스다. 이른바 'ESG 데이터'다. 여기에 뉴스와 공공 데이터 등 비재무 정보를 AI 알고리즘으로 수집·분석한 결과도 더했다. 지속가능발전소는 지난 6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돼 신용 조회 사업을 시작했다.
중소기업 대출 중개 플랫폼 '고펀딩'을 운영하는 현대커머셜은 대출 신청 기업에 대한 SCB 신용평가 보고서를 연계 금융사에 제공하게 된다. 크레비스는 비상장 기업 투자 심사 과정에서 SCB를 반영할 예정이다. ESG를 대출 심사 때 반영하면 중소기업들이 '지속 가능성'만으로도 대출이나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사회공헌을 활발히 하거나 노사 관계가 좋은 기업은 대출을 받을 때 유리한 셈이다.

그동안 은행 등 금융사들은 대출·투자 심사 때 기업 재무 정보에만 크게 의존해왔다. 이 때문에 업력이 짧거나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금융사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비재무 정보 기준이 없어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신용평가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당국이 동산금융 활성화 등 혁신금융을 요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7일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기술력과 미래 성장성 있는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금융사들이 ESG에 눈길을 돌린 또 다른 이유는 재무 정보만으로는 기업에 대한 '평판 리스크'를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총수의 불법행위 등 '오너 리스크'로 주가가 폭락하면 회사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평판이 나빠져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재무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외국 은행들은 이미 ESG를 중소기업 대출 심사 때 평가 요소로 넣고 있다. 최근 피치와 무디스 등 세계 4대 신용평가사들도 기업 신용평가에 ESG를 적용했다.
금융지주들도 적극적으로 ESG를 도입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딜로이트에 의뢰해 그룹 경영 전반에 ESG를 반영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지난해 9월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책임은행원칙 기관으로 가입한 뒤 그룹 차원에서 ESG를 강화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UNEP FI 책임은행원칙은 유엔에서 정한 지속가능개발목표와 파리 기후협약에서 정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은행이 추구하는 원칙이다.
우선 KB금융은 지난달 27일 '사회공헌문화부'를 'ESG전략부'로 바꾸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KB국민은행은 또 중소기업 대출 심사 때 ESG 등 비재무 정보를 반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올해 초에 전체적인 ESG 도입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2020 스마트 프로젝트' 중 하나로 ESG를 추진해왔다. 예를 들어 녹색채권(그린본드)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신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회적 채권(소셜본드)은 고용 확대와 중소기업 육성 등에 사용된다.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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