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신년기획 / 지구촌 제로금리 공습 ⑤ ◆
스웨덴 서남부 스코네주 소재 도시 룬드에 거주하는 클라스 닐슨 씨(71). 그는 대량의 현금이 필요할 때면 30분간 기차를 타고 인근 도시인 말뫼로 향한다. 집 근처에는 현금을 취급하는 은행 지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70대 나이에 홀로 움직이기 부담스러운 거리지만 현금이 익숙한 그에게 선택권은 없다. 닐슨 씨는 "나 같은 노인은 현금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점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제로금리 장기화로 '현금 없는(cashless) 사회'로 성큼 다가선 스웨덴에서는 디지털 금융 기술 발전으로 발생하는 고령층 등 특정 계층 소외 현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명 '디지털 금융 디바이드(divide·격차)'다. 통상 저금리가 지속되면 시중에 풀린 돈이 생산적인 경로로 흐르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제로금리를 겪어온 주요 국가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를 장려하는 움직임이 확산돼 왔다. 현금 거래·보관 비용을 낮춰 자금 회전율을 끌어올리고, 돈 흐름의 투명성을 제고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것이다. 마침 신기술과 금융 간 결합인 핀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를 앞당겼다.
스웨덴은 은행 지점 절반 이상이 현금을 받지 않는다. 대다수 상점에서도 현금 대신 직불카드나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특히 스웨덴에선 모바일 간편송금·결제 앱인 '스위시(Swish)'만 받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핀테크에 익숙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결제의 자유도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닐슨 씨는 "심지어 전통시장에서조차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며 "아내를 비롯한 노인 대부분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신기술에 익숙한 젊은 층은 핀테크 기반 모바일·비대면 거래 확대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적응한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스웨덴 전자신분증인 뱅크ID는 20대의 97.9%가 사용하지만, 80대 이상은 0.7%만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디지털 금융 디바이드의 낙오자는 노년층뿐만이 아니다. 스위시로 결제하려면 스웨덴 은행 계좌를 보유해야 한다.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이민자에게는 너무나 높은 장벽이다.
유럽 전체적으로 봐도 고령층이 주로 의존하는 은행 지점이 급감하고 있다. 유럽은행연합(EBF)의 올 9월 발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8개국의 은행 지점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7만4000곳으로, 전년 대비 약 5.6%(1만곳) 줄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었다. 2008년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은행 지점의 총 27%(6만5000곳)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됐다.인구 12만명인 조용한 대학도시 네덜란드 레이던 인근 작은 마을 포르쇼텐에서 만난 마리아 피터스 씨(65)도 은행의 과거 서비스를 그리워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은행에 담당 행원이 있어 이런저런 상담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 마을에서 은행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은행을 찾아가도 아는 행원이 없고 당연히 찾아오는 행원도 없다"며 "커뮤니티가 사라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점포가 사라진 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은 단순히 접근성 문제뿐 아니라 금리 혜택에서도 소외를 경험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상품을 가입하면 우대금리를 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 고령자 단체 에이지UK의 크리스 브룩스 선임 정책매니저는 "상당한 저금리이다 보니 모바일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이 같은 우대금리 정책에 분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스웨덴 정부는 이런 현상을 우려해 지난 9월 은행에 현금서비스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이 법을 2021년 1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디지털 금융 디바이드에 취약한 인구·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금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현금, 즉 캐시리스 결제 비중은 20% 수준이다. 여전히 도쿄 시내 곳곳에서는 ATM을 이용하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은행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은행들이 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ATM 수를 줄이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ATM 수는 성인 인구 10만명당 127.5개로 2009년 132.8개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고령층이 현금을 찾고 입금하기 하기 위해 의존했던 주요 도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 고이치 일본생명기초연구소 전무는 "70대 이상으로 가면 스마트폰도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한다는 것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 리서치 업체 MMD연구소가 지난 10월 50~79세의 일본 국민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0대 응답자 중 주로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가 스마트폰이라고 답한 비중은 20.8%에 불과했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웨덴 서남부 스코네주 소재 도시 룬드에 거주하는 클라스 닐슨 씨(71). 그는 대량의 현금이 필요할 때면 30분간 기차를 타고 인근 도시인 말뫼로 향한다. 집 근처에는 현금을 취급하는 은행 지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70대 나이에 홀로 움직이기 부담스러운 거리지만 현금이 익숙한 그에게 선택권은 없다. 닐슨 씨는 "나 같은 노인은 현금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점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제로금리 장기화로 '현금 없는(cashless) 사회'로 성큼 다가선 스웨덴에서는 디지털 금융 기술 발전으로 발생하는 고령층 등 특정 계층 소외 현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명 '디지털 금융 디바이드(divide·격차)'다. 통상 저금리가 지속되면 시중에 풀린 돈이 생산적인 경로로 흐르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제로금리를 겪어온 주요 국가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를 장려하는 움직임이 확산돼 왔다. 현금 거래·보관 비용을 낮춰 자금 회전율을 끌어올리고, 돈 흐름의 투명성을 제고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것이다. 마침 신기술과 금융 간 결합인 핀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를 앞당겼다.
스웨덴은 은행 지점 절반 이상이 현금을 받지 않는다. 대다수 상점에서도 현금 대신 직불카드나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특히 스웨덴에선 모바일 간편송금·결제 앱인 '스위시(Swish)'만 받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핀테크에 익숙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결제의 자유도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닐슨 씨는 "심지어 전통시장에서조차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며 "아내를 비롯한 노인 대부분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신기술에 익숙한 젊은 층은 핀테크 기반 모바일·비대면 거래 확대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적응한다.
유럽 전체적으로 봐도 고령층이 주로 의존하는 은행 지점이 급감하고 있다. 유럽은행연합(EBF)의 올 9월 발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8개국의 은행 지점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7만4000곳으로, 전년 대비 약 5.6%(1만곳) 줄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었다. 2008년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은행 지점의 총 27%(6만5000곳)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됐다.인구 12만명인 조용한 대학도시 네덜란드 레이던 인근 작은 마을 포르쇼텐에서 만난 마리아 피터스 씨(65)도 은행의 과거 서비스를 그리워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은행에 담당 행원이 있어 이런저런 상담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 마을에서 은행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은행을 찾아가도 아는 행원이 없고 당연히 찾아오는 행원도 없다"며 "커뮤니티가 사라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점포가 사라진 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은 단순히 접근성 문제뿐 아니라 금리 혜택에서도 소외를 경험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상품을 가입하면 우대금리를 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 고령자 단체 에이지UK의 크리스 브룩스 선임 정책매니저는 "상당한 저금리이다 보니 모바일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이 같은 우대금리 정책에 분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스웨덴 정부는 이런 현상을 우려해 지난 9월 은행에 현금서비스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이 법을 2021년 1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디지털 금융 디바이드에 취약한 인구·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금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현금, 즉 캐시리스 결제 비중은 20% 수준이다. 여전히 도쿄 시내 곳곳에서는 ATM을 이용하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은행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은행들이 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ATM 수를 줄이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ATM 수는 성인 인구 10만명당 127.5개로 2009년 132.8개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고령층이 현금을 찾고 입금하기 하기 위해 의존했던 주요 도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 고이치 일본생명기초연구소 전무는 "70대 이상으로 가면 스마트폰도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한다는 것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 리서치 업체 MMD연구소가 지난 10월 50~79세의 일본 국민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0대 응답자 중 주로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가 스마트폰이라고 답한 비중은 20.8%에 불과했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