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집값 내리고 전셋값 뛰자…다시 고개든 갭투자
입력 2019-12-29 18:52  | 수정 2019-12-29 22:13
내년 초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를 계획했던 직장인 김 모씨(45)는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대책 이후 강남 입성의 '꿈'이 좌절됐다. 12·16 대책으로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부족한 자금을 은행 대출(집값의 40%)로 채우려던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대치동 부동산에서 귀가 쫑긋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전세금이 많이 올라가고 있으니 전세를 안고 매수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60%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오히려 주택담보대출보다도 낫다고 했다. 부동산은 "원한다면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전세) 세입자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전세를 놓기 때문에 당장 들어가서는 못 살지만 현재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강남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방법뿐인 것 같다"면서 "본의 아니게 갭투자를 하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12·16 부동산대책 이후 강남 갭투자가 더욱 '성행'하고 있다. 원래 강남은 10개 중 6개는 세를 안고 매입하는 갭투자 선호 지역이다. 그런데 최근 대출은 막히고 전세금이 오르면서 갭투자 선호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갭투자가 집값을 부추긴다며 16일 대책에서 전세대출 축소 등 '갭투자'를 정조준했지만 오히려 대책 이후 전세금이 고공행진하면서 결과적으로 갭투자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지난 25일 신고가에 매매된 서울 아크로리버파크(164㎡)는 갭투자로 알려졌다. 이 물건은 종전 최고가(43억원)보다 8000만원 비싼 43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15억원 초과 대출을 금지한 12·16 대책 이후 발생한 최고 금액 거래여서 관심을 끌었다. 반포동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건은 전세와 매수가 동시에 진행된 경우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27억원에 전세로 들어올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처음부터 전세를 낀 물건은 아니고 매매와 동시에 전세(세입자)를 구했다"고 전했다. 12·16 대책 이후 강남 아파트 거래건 다수가 세를 안고 있는 갭투자다.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84㎡)는 22일 26억2000만원에 거래됐으며, 개포동 경남2차(182㎡)는 18일 26억원에 손바뀜됐다.
12·16 대책 이후 전세금이 오르면서 매수와 전세를 동시에 체결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신규 주택 매매 거래 중 63.5%가 전세 등 보증금을 승계했다. 비중은 지난 7월 57.8%에서 계속 오르고 있는데, 대출 규제로 갭투자가 더욱 증가하는 분위기다.
갭투자 매수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이충우 기자]
예를 들어 개포 래미안블레스티지(전용 99㎡형)는 27억~28억원인데 전세는 16억~17억원이다.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60%로, 주택담보대출 비율(40%)보다 높다. 상반기만 해도 같은 평형 전세금은 11억~12억원이었다. 개포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5월, 8월부터 쭉쭉 상승해 최근에는 전세금이 더 올랐다. 그러다 보니 3월에 전세 놓은 물건보다 지금 시세로 전세를 놓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학군지'로 유명한 래미안대치팰리스도 전세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갭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전용 84㎡형은 매매 시세가 30억원, 전세 호가는 매매가의 절반을 넘는 16억~17억원이다. 이 평형은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전세금이 13억원대였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 있는 물건을 오늘만 두 팀이 보고 갔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더라도 강남은 끄떡없다. 설 지나면 (집 보러 올) 사람은 더 많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16일 대책에서 집값 부추기는 '갭투자'를 정조준하며 전세대출 봉쇄 등을 담은 특단의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공급 축소와 매수 심리 위축으로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오히려 '갭투자'를 부추기고, 실제 전세 수요자들의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주인들이 자신의 집을 빨리,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전셋값을 더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이 막히면서 전세금이 많아야 갭투자자들의 현금 조달 비용이 줄어 집을 수월하게 팔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대출이 전면 중단되고부터는 매수자들도 초기 자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셋값이 높은 집만 찾아다니고 있다. 집값이 하락하지 않는 한 대출 규제가 전셋값 인상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선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