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박용만 회장의 한탄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 상시화"
입력 2019-12-29 12:51  | 수정 2019-12-29 14:38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이 상시화돼가는 것 같다. 과거 총선 때마다 선거 반 년 전부터는 모든 법안 논의가 중단되는 일이 반복돼 왔는데, 지금은 대립이 훨씬 심각하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나 국회와 정부를 향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재계의 대표적 '규제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그는 2020년을 앞두고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총선을 앞두고 경제 현안들이 정치 일정에 휩쓸리는 일들이 참 많아지고 있다"며 "경제 관련 입법과제들이 어떻게 될지 참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박 회장은 단기적인 대외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경제 시스템이 역동성이 떨어진 채 고착화돼 중·장기적 전망마저 어둡다고 전망했다.
박 회장은 "대외여건이 나빴던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방어 하려고 노력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숫자관리는 잘됐지만 민간 기여율이 낮아져 민간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는 그만큼 나쁘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심각한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이 굉장히 더디기 때문에 선진국과 비슷한 정도의 성장을 게속하기 어려워보인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간 주체의 위축으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키는'기업 집단의 고착화', '신산업의 위험성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규제'등 문제 해결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한계기업은 늘어나는데, 진입장벽을 갖추고 있는 기업들과 한계기업들의 두 집단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10대 기업 중 7개가 바뀌었는데 우리나라는 딱 2개만 바뀌었다"며 "결국 진입장벽을 갖춘 집단, 계속 연명하는 집단을 중심으로 짜여진 대로만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말로는 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시도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그만 리스크라도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방식이 너무 팽배해 있다"며"어떤 리스크가 다가올지 조차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전에 모두 점검해서 막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시대에 뒤처진 낡은 법과 제도를 고쳐 경제의 역동성을 키워야할 때인데도 국회와 정부는 제 역할을 못 해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새로운 산업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구조적 상황에 대한 우려다.
박 회장은 "우리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법과 제도의 틀이 낡았다"며"그런데 국회는 안 움직이고, 정부가 좀 하면 국회가 불러 혼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정부도 5년마다 정권이 바뀌니 누구도 감히 수혜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제도의 개혁을 못하고 있다"면서 "틀은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데 세상은 바뀌어가니까 그 틀에 억지로 넣으면 잘리고 나머지는 버려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근 청년 벤처·스타트업과 적극적인으로 소통하고 있는 박 회장은 이들의 대부분이 구조적 문제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벤처하는 청년들 얘기를 들어보면 비즈니스 모델이나 해외 시장 진출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입법 미비, 소극적 행정, 기득권과의 충돌, 융복합사업에 대한 몰이해 등 네 가지 문제가 그들의 고민"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20대 국회가 식물국회 등으로 비판받은 점을 언급하며 "20대 국회 같은 국회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날을 세웠다. 입법이 시급한 경제 현안들이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박 회장은 "여야 간 큰 이견 없는데도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서 왜 그런지 물어보면'사실은 저쪽 당과 의사일정에 협조를 못하는 상황이다'같은 설명이 돌아오거나, 총선 의식한 관심 법안들 교환이 끝나야 이 법도 통과시켜줄 수 있다고 한다"며 "정말 너무한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최근 논란에 대해선 "그레이존에 있는 사업을 임시방편의 임시방편으로 막아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박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타다 금지법이 미래를 막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박 회장은"우버니, 그랩이니 다른 나라에 다 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법의 루프홀을 이용해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정상은 아니라고 본다"며 "미래지향적인 사업이 나왔을 때 기득권의 이해나 충돌에서 빠져나와서 할 수 있게끔 해주고, 피해를 보는 것은 정부가 보전하고 보호해서 산업이 미래 산업으로 마이그레이션(migration)해서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우려를 표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원래 법 취지를 살리도록 법을 개정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진 않는다"면서 "그럼 앞으로도 새로운 사업이 나올 때마다 기존 업계에 피해 보는 분들이 있으면 미래기회를 다 막을 거냐, 정부는 이에 대한 답변을 줘야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택시업계 또한 체제의 피해자이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정부가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이건 택시업계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정부가 의무를 회피한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새로운 사업이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안타기 시작하고 걱정이 되는데, 면허를 내준 정부에서는 '당신들이 알아서 합의하라'니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올해 대통령을 직접 수차례 만난 박 회장은 재계와 대통령의 소통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회장은 "대통령께 건의한 게 상당부분 반영됐고, 당장 효과가 대단히 크다고 볼 순 없지만 시행규칙이나 행정명령 같은 걸 바꾸는 노력도 행정부에서 하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내년에는 백화점식 만남 보다는 산업별, 그룹별로 어느 정도 이슈를 공유하는 그룹을 만나셔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규제 개혁을 위해 내년에 집중할 분야로는 '샌드박스'의 활용성 개선과 데이터3법 통과를 꼽았다. 박 회장은 "당장은 계속해오던 데이터 3법 통과에 집중할 것"이라며 "왜 그렇게 그걸갖고 난리냐고 하는데 데이터 이용이 미래 산업의 기본중에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그는 "새롭게 벌이는 사업을 위해 법과 제도를 다 바꿀 수 없으니 가장 효율적인 도구 중 하나인 샌드박스를 더 넓고 빠르게 만들려고 한다"며 "대통령께도 주무부처 가는 데 한참 걸리니 민간 접수 기구를 만들어 달라는 건의를 드렸고, 잘 하면 상당히 임팩트가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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