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생명을 구하러 머나먼 이국 땅으로 파견된 미국 군견들이 유기견만도 못한 참혹한 취급을 받으며 굶고 병들다 목숨을 잃자, 이를 수수 방관해온 탓에 거센 비난을 받은 미국 국무부가 탐지견을 험지에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문제될 소지를 없애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23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는 중동 분쟁지인 이집트와 요르단 지역에 폭발물 탐지견들을 더이상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과 BBC등이 이날 전했다. 국무부 공보관은"탐지견은 테러를 방지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며, 이미 파견된 경우라면 계속 복무하게 될 것이며 군견 관리 처우를 개선할 것"이라면서 "전장에서 군견이 죽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극히 슬픈 일"이라는 입장도 냈다.
요르단 미군 기지서 폭발물 탐지견이 죽어가는 데도 추가 조치 없이 파견만 계속한 미국 국무부. [사진 출처 = 워싱턴포스트(WP)]
국무부의 이번 결정은 연방 의회 등의 요구에 따라 국무부의 군견 파견·관리 실태 추가 조사 보고서가 지난 20일 나온 것이 배경이다. 수의사들은 현장 실태 보고서를 통해 "폭발물 탐지견들이 열사병에 걸린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부적절한 관리를 받거나 방치됐기 때문"이라면서 "심지어 일부 탐지견들은 극도로 끔찍한 병에 시달리다가 심장 마비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집트와 요르단 일대에 파견된 탐지견 등은 아무런 계약서와 서명도 없이 해외 협력단이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관리했지만 관리 메뉴얼이나 중간 점검도 소홀히 이뤄졌다고 보고서는 적었다.이번 보고서는 앞서 9월 중순 공개된 미국 국무부 감사 보고서가 파문을 일으킨 데 따른 2차 조사 결과물이다. 9월 보고서에는 2008~2016년 동안 요르단에 파견된 폭발물 탐지견 90여 마리 중 최소 10마리 이상이 군 부대에 방치돼 생명을 잃었다는 내용이 담겨 미국 공화·민주당을 불문하고 의회 내 공분을 샀다.
앞서 10월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자신이 이끄는 정부가 척결했다고 자랑하면서 알바그다디 추격과정에 공을 세운 벨기에 말리노이즈 종 군견 '코난'을 치켜세웠지만, 정작 다른 지역에서는 똑같은 종 군견들이 더러운 곳에서 굶주리며 죽어갔다는 점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군견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기 바빴다는 국내외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120여년 만에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백악관에 반려견을 들이지 않아 2017년 취임 때 세간 눈길을 끌기도 했었다.
IS수장 척결 소식 발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코난에게 훈장을 매달아주는 합성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는 가 하면 지난 달 25일 백악관에 직접 불러 대대적으로 홍보전을 벌인 바 있다. 다만 국무부 군견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19년 새 이집트에서는 미국 군견 10마리 중 3마리가 폐암과 쓸개 파열, 쇼크 등으로 사망했다.
탐지견 등 군견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사람 대신 위험한 일을 떠맡기 때문에 더 세심한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요르단에 파견됐던 폭발물 탐지견들은 굶어서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데다 털은 진드기가 매달려 엉켜있었고 아무도 발톱을 깎아주지 않아 길게 자란 발톱이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버렸다. 2살짜리 벨기에 말리노이즈 종 '조이'는 열사병에 시달리다가 심장마비로 2017년 죽었다. 같은해 요르단에 파견된 3살짜리 같은 종 '멘시'는 모래파리에 물리고 진드기에 시달리다가 합병증이 생겨서 1년도 안돼 미국에 돌아왔지만 고통에 시달리다가 안락사했다.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요르단 탐지견의 텅빈 밥그릇, 안락사하기 전 고통에 시달려 앙상해진 탐지견 `멘시`, 방치돼 갈고리처럼 변한 탐지견의 발톱, 아사 직전에 놓여 고통받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탐지견 `아테나`. [사진 출처 = 미국 국무부 감사보고서·워싱턴포스트(WP)·BBC]
그간 국무부는 별다른 조치 없이 추가로 군견만 파견해 빈축을 사왔다. 이때문에 지난 9월 연방 의회 의원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향해 "사람 목숨을 구하기 위해 외지에 파견된 군견이 정작 수의사 보살핌은 커녕 사료도 제대로 못 먹고 생존하기 힘든 환경에 방치됐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면서 "특히 현장을 방문했던 국무부 관계자들이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유감"이라고 비판한 후 후속 대책을 요구한 바 있다.로이터 통신은 미국 국무부의 '테러방지협력프로그램'에 따라 135마리의 폭발물탐지견이 요르단과 이집트를 포함한 8개국에 파견돼 공항·육로 접경지에서 일하고 있다고 23일 전했다.
이 중에서도 요르단은 미국 폭발물 탐지견이 가장 많이 파견된 나라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미국은 169~189마리의 탐지견을 요르단과 이집트, 바레인, 이집트, 인도네시아, 레바논, 멕시코, 모로코, 네팔, 오만 등 해외 9개국에 파견했는데 이중 89마리가 요르단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난 9월 보도한 바 있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